정양환 문화부 기자
“웬걸? 그래도 ‘갑’이잖아.”
요즘 갑을(甲乙) 관계가 이슈다. 갑의 횡포, 을의 설움…. 자극적이나 공감하는 이가 많다. 살다 보면 주눅 드는 처지에 놓였던 적 대부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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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낀 김에 쭉 삐딱하면, 황상은 태생부터 을이었다. 시골 아전의 자식이니 봉건사회에서 대성하긴 글렀다. 오죽하면 귀향 온 죄인인 다산에게 글을 배웠겠나. 사대부라면 나중에 ‘갑 커뮤니티’ 진출에 누가 될까 꺼렸을 게다.
스승에게도 한결같이 을이었다. 정약용에게 배우고도 등진 이 숱했으나 그만은 의리와 본분을 지켰다. 초서(抄書·책의 중요 부분을 옮겨 씀)에 치중하란 조언을 칠순 넘어서까지 따랐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엔 자제에게도 극진했다. 치원에게 다산의 가르침은 금이고 옥이었다.
단 하나, 스승 뜻을 거스른 게 있었다. 도통 과거를 응시하지 않았다. 황상의 재능이라면 뭐가 되어도 됐을 텐데, 스스로 을의 삶을 자처했다. 그의 꿈은 탁한 세상을 피해 조용히 사는 ‘유인(幽人)’이었다. 스승이 모의고사로 짓게 한 부(賦·한자 여섯 자로 한 글귀씩 짓는 글)에서 열여덟 소년은 탈속의 행복을 노래했다.
“천지의 기운이 드넓게 퍼져/ 허공에 춤을 추며 뒤섞이누나/ 산비탈 타고서 솟아올라서/ 푸른 하늘 끝까지 내달린다네 … 밭두둑서 겨자 싹을 따가지고 와/ 뜨락에서 약 모종을 바라본다네/ 이미 곳을 얻어서 즐거워하니/ 내 장차 세상 피해 숨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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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갑을의 칡넝쿨을 을의 수양 부족 탓으로 떠넘기면 곤란하다. 세상이나 조직이 만든 저울을 개인에게 책임 돌릴 순 없다. 다만 갑입네 거들먹거리는 분들, 상대가 당신네보다 훨씬 상질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라. 하긴 그걸 알 만한 인격자라면 첨부터 갑을 운운하는 소리 나오게도 안 했겠지.
깜냥은 병정(丙丁)쯤 되나, 행여 누구에게 유세 떨진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하련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