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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 없고 칼퇴근 자발적 非정규직 ‘미스김’이 늘고 있다

입력 | 2013-04-30 03:00:00

‘노동-삶의 여유’ 균형 중시하는 젊은층 중심 4년새 9%P ↑
전문가들 “아직 유럽수준 안돼 비자발적 강요 측면도”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슈퍼 갑 비정규직’인 미스 김이 당당하게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직장의 신’ 홈페이지 캡처

퇴근시간은 1분 1초도 어기지 않고 지킨다. 회식에 참석할 땐 시간외수당을 받는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피하려 연락처도 남기지 않는다. 드라마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김혜수 분) 이야기다. 그는 계약직이지만 자격증을 124개나 갖고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 ‘슈퍼 갑(甲)’으로 행세한다.

드라마의 캐릭터는 과장된 측면이 강하지만 현실의 이현정 씨(30·여)도 당당한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정규직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 재계약에 목매지 않는다. 열패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지인이 운영하는 자동차부품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2009년 대학 졸업 후 아예 그 업체에 취직했다. 대기업 정규직에는 지원조차 안 했다. 정규직이 되면 야근과 잔업 때문에 일본어, 요리 등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지 못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2011년 회사는 재계약을 하자고 했지만 거절하고 일본으로 두 달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 씨는 지난해 다시 한 문구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그는 “평생직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며 “올해 말 계약이 끝나면 남미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후 여행 책을 펴내는 것이 그의 인생계획 중 하나다.

김모 씨(32)도 마찬가지다. 특정 회사에 얽매이는 게 싫어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보장받고 지난해부터 한 부동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정규직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고개를 흔든다. 정규직과 임금 차이가 크지 않고 퇴근 후에는 레고 등 취미활동을 할 수 있어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 자발적 비정규직 꾸준히 늘어

갖가지 이유로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2008년 8월 말 218만8890명이었던 자발적 비정규직의 수는 지난해 8월 말 289만6390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비정규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40.2%에서 49.0%로 높아졌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까닭은 다양하다. 통계청 조사항목에는 △근로조건에 만족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서 △직장이동이 쉬워서 △노력한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등의 이유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단기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프리랜서도 자발적 비정규직에 포함된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재택근무나 프리랜서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젊은층에서 일과 삶의 자유로운 조화를 위해 비정규직 형태로 일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인식이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기업 경영환경과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고용에 관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기대가 접점을 찾아가는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사용자는 노동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근로자는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처우가 좋으면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강요된 자발성’은 풀어야 할 과제

여성들은 육아 문제 때문에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수영 씨(37·여)는 3세, 5세 두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계속 맡기기가 미안해 스스로 비정규직을 택했다. 회사에서는 2월 정규직을 제안했지만 일에 치여 가정에 소홀하기 쉬운 ‘워킹맘’들을 보고 거절했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갖고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다들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안달이지만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일보다는 시간 활용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례를 순수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지 및 구인·구직 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의 비정규직은 대부분 스스로 선택하지만 국내에서는 자발성이 ‘강요’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의 자발적 비정규직은 선택의 폭이 한정돼 자발성을 강요당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으로서는 싼 임금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인적자원의 인프라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어 손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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