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치/프랭크 푸레디 지음/박형신 박형진 옮김/256쪽·1만6000원/이학사
그러나 영국 켄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요즘의 우파는 더이상 전통을 지키지 않고, 좌파는 더이상 변화를 신봉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의 온정적 보수주의는 유럽 좌파의 ‘제3의 길’과 비슷하게 수렴하는 반면 좌파 진영은 유전자학이나 정보기술 혁신을 ‘진보적 악(惡)’이라 표현하며 불안감을 부추긴다.
이처럼 과거와 단절된 보수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진보는 양측 모두 역사의식을 잃고 방황한다. 대신 현재에만 집중하는 21세기의 좌파와 우파가 공유하는 가치는 ‘공포 보수주의(conservatism of fear)’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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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보수주의의 가장 일관된 옹호자들은 시애틀, 제노바, 런던의 거리로 뛰쳐나온 반자본주의 시위대가 아닐까. 그들의 급진주의는 변화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하는 급진주의다. 이들의 반자본주의는 인간 해방이라는 오랜 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공포이자, 자연이 지배하던 정적인 농촌 공동체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본능이다.”
우파는 지난 300년 동안 예기치 못한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유대인,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을 제기해왔다. 과거의 좌파는 이러한 모든 형태의 미신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의 자칭 좌파는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위험과 음모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해 하이테크 미신들을 구체화한다”고 비판한다.
‘공포정치’란 정치인들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불안을 의식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정치 엘리트들은 일부러 공포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 테러와의 전쟁, 환경오염, 세균전, 원자력발전, 조류독감, 구제역,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 불법이민, 먹거리, 연금고갈까지 공포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내면화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치인부터 시민단체(NGO)까지 맞닥뜨린 문제는 다만 공포를 최소화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치의 위기와 공포의 만연을 지적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으로 책을 맺는다. 그는 우선 좌파와 우파라는 구석기시대적 구분법을 집어던질 것을 촉구한다. 대신 지식으로 무장하고 기꺼이 과거로부터 학습하고 미래를 직시하는 보다 확신에 찬 강건한 정치를 촉구한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취임연설처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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