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인들이 ‘북한의 변화와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꼽는 것은 외부 정보의 주입과 유통이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민주화 과정에서 목격한 것처럼 바깥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독재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분노와 박탈감을 키우고,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변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 왔다. 2004년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 이후 미 행정부와 각종 기금은 북한 주민들에게 대북 전단(삐라)을 날리고 대북 방송을 내보내는 등의 활동에 앞장선 남한 내 민간단체 수십 곳에 많게는 한 해 500만 달러(약 56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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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무부 인권노동국(DRL)은 한국 단체들에 지원하던 연간 350만 달러 규모의 별도 기금 계정을 2011년 10월에 시작하는 2012 회계연도부터 아예 없애고 같은 돈의 지원 대상을 아시아 전체 국가의 민주화 운동 단체들로 확대했다. ‘서울대 지원 기금’을 ‘서울 소재 대학 지원 기금’으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 한국 단체들에 돌아온 돈은 2012 회계연도에 100만 달러 이하, 2013 회계연도에는 20만 달러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5개 단체가 간신히 지원받고 있으나 이 중 3개가 올해 9월, 나머지 2개는 2014년 9월로 지원이 끊길 신세다.
의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 단체들에 연간 135만 달러가량을 주고 있는 전국민주주의기금(NED)은 ‘북한 민주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으로 지원 대상을 좁혔고 북한 인권 실태 조사 사업은 올해 10월 지원이 끊는다. 지난해 수십만 달러를 탈북자 단체들에 지원했던 미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도 한국에서 곧 철수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의 외면 속에 북한 민주화에 투신해 온 단체 수십 곳은 문을 닫을 판이다. 반면 자신들의 실체를 발가벗기는 삐라와 라디오 방송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 온 북한 엘리트들은 춤을 출 것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핵 국가 대열에 바짝 다가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장 필요한 지금 미국의 재정위기로 북한 민주화 자금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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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