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스포츠부 부장
그런데 예외적으로 미셸 위(이하 미셸) 같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부모가 한국인이고 자신은 외국에서 태어나 자동적으로 한국과 외국 국적을 모두 지닌 사람)는 만 22세가 되기 전에 ‘한국 내에서는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셸은 서약 시효가 지나 한국 정부로부터 국적 택일(擇一) 명령을 받았고 미국을 택했다.
불현듯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위스 경찰에 쫓기던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며 미국대사관 안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미국대사관 위병은 “여긴 당신네 관할 지역이 아니다”며 스위스 경찰을 소총으로 가로막고 단호히 제지한다. 바로 코앞에서 수배자를 놓친 스위스 경찰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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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국적은 ‘가장 든든한 보호자 겸 은신처’다. 선진국일수록 대사관과 영사관의 자국민 보호는 철저하다. 미셸이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한국보다는 미국이 더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혹시 미셸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호크 다운’을 감명 깊게 보고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선 한두 명의 미군을 구하기 위해 수십, 수백 명의 미군이 사지(死地)에서 구출작전을 펼친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쾌재나 낭패는 선택의 결과다. 미셸의 한국 국적 포기를 놓고 누리꾼들은 “잘했다” 또는 “배신감을 느낀다”며 한동안 각종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논란을 벌였다. 하지만 국적 선택은 오롯이 개인의 행복추구권 차원의 일이다.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미셸과는 케이스가 다르지만 안현수(쇼트트랙)와 추성훈(유도)은 복수국적을 가질 여건이 안돼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파랑새(일상의 행복)’를 좇아 각각 러시아와 일본으로 귀화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복수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2012년 말 현재 1만1599명이다. 미셸처럼 복수국적을 유지하다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2011년 1324명, 2012년 823명이다.
미셸의 한국 국적 포기 사실이 게재된 지난달 26일자 관보를 보면 한국 국적 회복자(80명)가 포기자(20명)보다 많았고 국적 회복자는 모두 1950년 이전 출생자였다.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돼 미국 부럽지 않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된다는 기분 좋은 가정을 해보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외국 국적 이민자들의 한국 국적 회복 신청이 쇄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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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 부장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