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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종수]삶터를 가꾸어야 행복해집니다

입력 | 2013-03-02 03:00:00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지금 이 시대는 행복이 화두입니다. 새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행복을 스무 번이나 언급했답니다. 역대 정부들이 성장과 민주화, 세계화, 심지어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까지 나오는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행복을 키우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확산되는가 봅니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 그것을 순위로 따져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다른 지표들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무역으로는 세계 8위, 경제력은 15위, 국가경쟁력은 22위입니다. 이에 반해 행복은 세계 27위, 다른 어떤 조사에서는 68위를 한 적이 있고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조사에서는 102위로 평가된 적이 있습니다. 무척 자존심 상하고 마음이 불편하지만 굳이 외국 기관들의 평가지표를 찾아 그 타당성을 따져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럴 개연성이 있는 징후들을 주위에서 명백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률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곁에서는 한 해에 원주시 혹은 진주시 인구 규모의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고 무려 1만6000여 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버리고 있습니다. 실로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안을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필자는 우리의 삶터를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활동 및 시간의 공간을 삶터, 일터, 쉼터로 나눌 때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일터 일변도의 가치관과 정책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우리가 정서적 안정을 얻고 심리적 치유를 경험하며 모둠살이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동네 공동체는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아니, 파괴해 왔습니다. 올해에도 설날 아침 우리 모두는 기껏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이웃을 살해했다는 슬픈 뉴스를 접해야 했습니다.

동네 공동체가 활성화된 지역일수록 거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을 느낀다는 연구는 이미 다양하게 발표돼 있습니다. 자그마한 자투리땅이라도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동네마당이 있는 곳일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더 신뢰하고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마을 만들기를 함께 추진하는 지역의 사람들일수록 삶의 행복감을 더 느낀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동네효과(community effect)’라고 부릅니다. 동네 공동체를 활성화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동네효과는 단순히 정서적 행복감을 높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성원 사이에 믿음과 신뢰, 규범을 튼튼하게 해줘 결국은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시켜 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수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후 시장이나 정부보다 지역 공동체가 경제적 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저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소유욕과 경쟁을 자극하는 사유화, 또는 국유화 같은 권위적 조치로는 진작에 파괴되었을 관개수로, 산림, 호수, 천연자원이 공동체적 관리로 수백 년 동안 잘 보존되고 활용돼 왔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모둠살이를 하는 존재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 혼자 따로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입니다. 이 모둠살이의 터전인 삶터를 파괴해 놓고서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게 어려울 것입니다. 이 삶터를 회복하고 가꾸는 일이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중요해 보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몇 년간 적금을 부어 그 돈으로 10박 11일간 유럽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돈을 열흘 만에 다 쓰면서 외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터를 구경하고 부러워하지요.

이제 우리가 삶터를 가꾸어야 할 시점입니다. 동네 공동체를 회복하고 가꾸는 일이 이 시대에는 필요해 보입니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공동체운동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와해된 지역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유공간을 넓히며 꽃을 가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삶터의 정치’도 시작되겠지요. 그런데 한번 신뢰가 무너진 지역공동체를 가꾸려면 무엇보다 초기의 촉발 노력을 지원하는 게 중요합니다. 신뢰와 관계가 와해된 상태에서는 그것을 시작하는 사람의 불확실성과 위험 그리고 비용이 큰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초기 노력을 지원해 주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에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운동으로 성공하기만 하면 국내외 모든 사람은 그것을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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