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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병달 교수의 4대강 자전거 종주

입력 | 2013-03-02 03:00:00

휙 지나치던 숨은 절경, 느릿느릿 미니벨로에선 보이네




경인 아라뱃길을 달리다 잠시 숨 돌리는 삼성서울병원 이병달 교수와 미니벨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가까운 데나 댕기제, 먼다고 추운디 먼 데까지 와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허연 입김을 뿜으며 아침 일찍 식당에 들어서는 두 남자가, 주인아주머니는 이상해 보였나 보다.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자전거 두 대, 그리고 괴나리봇짐을 연상시키는 배낭.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피식 웃었다.

“요즘엔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없나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다시 끌끌 혀를 찼다. “봄가을엔 많이들 와. 딴 사람들처럼 날씨나 좀 따땃해지면 오제, 먼다고…. 올겨울 들어선 손님들이 첨이여.”

청명한 하늘. 수은주도 많이 올라갔다. 그러나 2월 중순의 날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따지고 보면 기자의 ‘이 고생’은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됐다. 4대 강을 종주한 인물을 찾던 중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20인치의 ‘무한 도전’

사진 속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선수들이 타는 날렵한 사이클도, 힘 좋아 보이는 산악자전거(MTB)도 아니었다. 바퀴 지름이 20인치(약 50cm)밖에 되지 않는 미니벨로. 아담한 디자인 때문에 여성에게 인기가 있지만, 동네 심부름 갈 때나 쓰는 자전거가 아닌가.

남자는 그런 미니벨로를 타고 4대 강 자전거 길을 종주한다고 했다. 이미 지난해 4월 한강과 새재, 낙동강의 자전거 길을 달렸다. 서울 잠실에서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600여 km 종주에 성공했단다.

이병달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64)였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미니벨로로 하셨다는 국토 종주 경험을 좀 들려주시겠어요? 제 자전거도 미니벨로라 관심이 많이 가네요.”

이 교수는 4대 강 중 한강과 낙동강을 종주했지만 영산강과 금강은 아직 자전거 여행을 끝내지 못했다고 했다. 마침 여행을 떠나려던 시점이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같이 해 보는 게 어때요?” 기자더러 ‘멘티’가 돼 직접 몸으로 느껴보라는 뜻. 이 교수와의 한겨울 영산강과 금강 종주가 시작된 사연이다.

종주 전날 밤, 이 교수와 야간 우등 고속버스에 올랐다. 물론 미니벨로와 함께. 버스는 새벽에 광주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담양행 첫차를 탔다. 영산강 종주 자전거 길의 시발점이 바로 담양댐이니까!

드디어 종주의 시작.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배가 고픈 것만 빼면…. 담양읍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이 ‘아침 식사 됩니다’였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다시 출발.



진정한 두 바퀴의 자유

“미니벨로는 빨리 달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그 대신 세상과 풍광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죠.”

인적이 드문 한겨울 자전거 길. 덕분에 두 대의 자전거는 나란히 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달릴 수 있는 것도 미니벨로의 장점이죠. 자전거 타는 즐거움이 커진다고 할까요.”

‘멘토’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가 자전거 여행을 머릿속에 그린 시점은 지난해 4월이라 했다. 부산 을숙도에서 4대 강 자전거 길 완공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바로 4대 강 종주. “평소 좋아하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온 국토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사이클이나 MTB를 타려 했다. 빨리 달리면 2박 3일, 조금 여유를 가져도 3박 4일이면 될 테니까. 그랬던 계획을 출발 직전 바꿨다. 추억을 살려볼까? 젊은 시절의 ‘무전여행’ 콘셉트로…. 미니벨로를 선택했다. 조금 더 넉넉하게 일정도 5박 6일로 늘렸다.

재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풍광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자전거를 멈췄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했다. 배가 고프면 어떻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온전히 즐겼어요. 그렇게 6일 내내 즐기고도 비용은 1인당 20만 원도 안 들었어요.(웃음)”

강 따라 절경이 가득

“저길 봐요, 저기. 정말 장관이네 장관이야.”

영산강을 따라가다 광주를 지나는 길에 이 교수가 외쳤다. 그의 손가락은 무등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하얀 구름이 무등산 정상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절경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할까. 천천히 달리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광경이었다.

강변에 조성된 야구장에는 주말 야구 연습을 하러 나온 어린이들의 함성이 가득했다. 또 다른 야구장에서는 아저씨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강변의 오토캠핑장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마을을 통과할 때는 동네의 개들이 일제히 컹컹 짖어댔다. 따스한 햇볕을 받은 한낮의 도로에는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벌써 봄인가.

자전거 여행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풍경과 인간 세상. 멀리 강물 위에 졸면서 떠 있는 철새 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시 멘토인 이 교수의 한마디. “최고의 절경은 경북 고령을 지나는 낙동강 자전거 길이에요. 고령 인근의 비포장 구간에 낙동강을 까마득히 내려다보는 길이 있어요. 아주 힘들죠. 그렇지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이 교수는 시골 정취가 가득한 충주∼수안보 새재 자전거 길의 정겨운 풍광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고생을 한 날도 많았다 한다. 지난해 5박 6일간의 국토 종주 마지막 날이었다. 때아닌 폭우에 강풍까지, 그야말로 일진이 그처럼 사나울 수 없었다.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을숙도. “그래도 그 기분만큼은…. 종주를 끝낸 그 행복을 어디에 비기겠습니까?”



미니벨로로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을

3일간 영산강과 금강의 자전거 길을 모두 달렸다. 그 결과 이 교수는 4대 강의 종주를 끝냈다. 이 교수의 새로운 목표. 미니벨로로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거란다. 이미 완공된 북한강 자전거 도로와 현재 조성 중인 섬진강 자전거 도로는 물론이고 앞으로 조성할 제주 환상 자전거 도로까지 모두 가보겠다는 포부다.

“대학 다닐 때부터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쉰 넘어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죠.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미니벨로로 국토를 완주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교수는 운동 마니아라 불린다 했다. 자전거뿐 아니라 등산과 마라톤에 철인 3종 경기까지 못하는 게 없다.

50세 때인 1999년 마라톤에 입문한 뒤 풀코스(42.195km)를 70회 완주했고, 철인 3종 킹 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도 5차례 완주했다. 서울대 의대 2학년 시절(1971년)엔 의대 산악부원 5명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암벽루트도 개척했단다. 그 루트에 ‘의대길’이란 이름도 붙였다. “의대 교수님이 아니라 체대 교수님이신 거 같아요.”

모든 운동종목이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자전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공간의 확장성이 커진다고 할까요. 자전거를 타면 행동반경이 무척 넓어져요.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편한 대로 다닐 수 있죠. 어지간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서 가니까 1년 자동차 기름값이 100만 원도 안 나와요.”

아무리 그래도 커다란 중형차가 더 낫지 않을까. 이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달려야 하잖아요.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끝내 달려 내 자전거 바퀴가 낸 궤적이 끊어지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 자전거를 안 타 본 사람이 그 맛을 알겠습니까?”



에필로그, 멘토는 강했다

3일간 300km 가까이 자전거를 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멘토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40대 초반의 저질 체력 멘티가 문제였다.

첫날 100km를 넘게 달렸다. 그 때문에 둘째 날부터 기자의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금강 하굿둑을 출발해 백제보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이 교수는 ‘장경인대염’이라며 “쉬면 낫는 거니 크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아, 무심하다. 기자는 둘째 날도 오후 늦게까지 페달을 밟아야 했다.

마지막 날인 3일째. 세종보에 닿을 즈음 페달을 밟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이 교수가 배낭에서 파스와 진통제를 꺼냈다. “믿어 봐요. 의사가 준 맹물을 마시고도 병이 낫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웃음)”

약의 힘, 아니면 믿음의 힘? 신기하게도 다시 페달을 밟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통증. 몇 시간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최종 목적지인 대청댐에 도착.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헉헉거리는 기자와 달리 너무나 멀쩡한 60대 멘토의 강철 체력이 조금 얄밉긴 했지만….

▼ 4대강 자전거 종주의 재미 ‘도장 받기’ ▼

■ ‘자전거 여권’ 사면 길목마다 스탬프 쾅… 4대강 다 돌면 메달


어릴 적 선생님으로부터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는 기분이랄까. 4대강 자전거 종주의 또 다른 재미. 바로 ‘도장 받기’다.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는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이라 적힌 수첩(일명 여권)을 만들었다. 자전거길 곳곳에 마련된 인증센터에서 구입 가능. 수첩을 산 후 ‘이곳을 다녀갔다’는 의미로 스탬프를 찍으면 된다.

예를 들어 영산강 종주 자전거길에는 담양댐, 메타세쿼이아길, 담양대나무숲, 승천보, 죽산보, 느러지 관람전망대, 영산강 하굿둑 등 7개의 인증센터가 있다. 인증센터마다 스탬프 모양이 다르다. 담양댐에는 댐 모양, 담양대나무숲에는 대나무 모양의 스탬프다.

순서대로 스탬프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한 코스를 여러 번에 나눠서 종주해도 된다. 7개의 스탬프를 모두 찍은 후에는 따로 인증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이 스티커는 수첩 뒤쪽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 붙인다. 그러면 그 코스의 종주를 끝냈다는 증거가 된다.

인증센터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기도 하다. 모든 인증센터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 부스. 요즘 들어 쓰임새가 줄어든 공중전화부스를 재활용했다. 몇몇 인증센터에는 매점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여행 중 이보다 좋은 쉼터가 있을까.

좋은 정보 하나 더! 633km에 이르는 국토종주(아라 서해갑문∼낙동강 하굿둑)와 4대강 종주(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모두 종주)를 끝냈다면 인증스티커 말고도 인증메달까지 받을 수 있다. 이미 완공됐거나 조성 중인 9개 구간(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금강, 영산강, 북한강, 섬진강, 제주)을 모두 종주하면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스티커도 획득 가능.

다만 무인 인증센터도 적지 않다. 그러니 어디에서 수첩을 살 수 있는지는 미리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다. 자세한 사항은 4대강 콜센터(1577-4359)나 4대강 이용 도우미(www.riverguide.go.kr)를 참고하자.

영산강·금강=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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