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7, 8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하와이에서 한 국제의학회가 열렸다. 다국적 제약사의 초청을 받은 국내 의사만 어림잡아 20명 정도. 그들의 항공비와 참가비는 제약사가 부담했다.
컨벤션센터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새로운 의학기술에 대한 목마름. 한국 의사들도 ‘신지식’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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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루 종일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하와이의 낭만을 즐기는 건 그들에게 사치였다. 식당을 알아보고, 관광지를 물색하고, 술 마신 다음 날의 해장을 위해 컵라면을 준비하고, 그래도 혹시 불편한 게 없으신지 물어보고…. ‘갑’과 ‘을’의 냉혹한 현실. 씁쓸했다.
의사만 접대하면 그나마 다행. 몇몇 의사가 대동한 부인들은 자신을 의사라 착각하는 듯했다. 이 집 음식은 맛이 없다, 저번에 간 학회가 정말 좋았다…. 그러니 양산을 쓰고 한껏 멋을 낸 부인들도 상전. 심지어 어린 자식들을 데려와 하와이 해변에서 노는 의사들도 있었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런 건 아니었다. 꼼꼼히 연구 발표를 챙기고, 저녁에도 리뷰를 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그런 의사에게 물었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학회에 참가한 건지, 여행을 온 건지 구분이 안 되네요.”
그의 해명. “부인과 자식 항공비는 본인이 댑니다. 도덕성을 지적한다면 할 말 없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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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국제의학회가 열릴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라고 했다. 의사가 부인과 함께 오면 “좋은 추억 만드시라”며 샴페인 바구니를 호텔 방에 넣어주기도 한다 했다. 상전처럼 행세하는 의사들이 고깝지만 제약사가 을인데 어쩔 수 있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시 애원하듯 말했다. “기사를 쓰시면 안 됩니다. 의사와 제약사가 얼마나 피해를 입겠어요? 우리가 최대 피해자가 됩니다.”
필자는 결국 그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의약품 리베이트가 이슈로 떠올랐다. 준 쪽과 받은 쪽을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도 시행됐다. 4000여 명의 의사가 적발됐다. 어쩌면 그들은 ‘아주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대한의사협회가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처방과 관련된 리베이트를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자체 윤리 규정을 만들어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한국제약협회도 ‘뒷돈’ 근절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불법과 합법의 기준을 정부가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의사에 대한 강연료·자문료 지급, 연구비 지원, 학술·교육 지원만큼은 허용해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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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