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 암거래 만연…의료서비스 빈부격차 심화"
북한이 한 산부인과 병원에 '호텔 같은' 유선종양연구소(유방암센터)를 지어 눈길을 끈다.
북한은 지난해 말 유방암을 본격적으로 연구·치료하겠다며 산부인과 병원인 평양산원에 유선종양연구소(유방암센터)를 지었다. 이 센터에는 유럽에서 수입한 CT(컴퓨터단층촬영) 장비 등이 설치됐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근무한 우수 의료진도 배치됐다.
한 평양시민은 여기서 치료 받은 뒤 "호텔에서 휴양하는 느낌"이라고 감탄했다.
17일 서울대 의대 통일의학센터 박상민 교수팀이 의사 출신 북한이탈주민(9명)과 일반 북한이탈주민(2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북한 의료현실을 다룬 '북한의 보건의료체계 현황조사 및 균형적 질 평가' 보고서를 보면 북한 의료현실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국부(國富) 축소로 국민의료비를 줄여왔고 이 때문에 의료인에 대한 임금지급 기능과 각 의료기관에 대한 의약품 공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의약품 공급 등 의료체계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기능 약화와 이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의약품의 암거래 현상이다.
중앙의약품관리소에서 각 도·시·군의 약품관리소로 전달돼야 할 의약품 중 적잖은 수량이 유출되고 있고 이 의약품은 암시장(장마당)으로 넘겨져 주민들에게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약품공급이 끊겨 병원에서 주민에게 무료로 줄 수 있는 약은 한약이 대부분이며, 모든 의사가 매년 2회씩 약초 채취에 동원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암시장에서 약을 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조사대상자(199명)의 69%에 달했다.
박 교수팀은 "배급·수당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료인과 약품공급에 연관된 중간 매개자들에게 의약품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도구가 됐다. 의료인에게도 비공식적 의료시장이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산전·산후 여성에 대한 의료지원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팀은 "정부 소유 의료기관들이 충분한 예산 없이 의료서비스 유지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고 이미 시장기능과 연계돼 복합적인 후기 사회주의 의료체계에서보이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민들이 의료서비스에서 쉽게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한국 및 국제사회의 향후 대북 의료지원 방향에 대해 북한의 보건의료 질병 부담 및 우선순위를 세부적으로 따져 임신·출산 등 취약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동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