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보 참모가 갖춰야 할 가장 기초적인 덕목은 확고한 국가관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국가에 대한 봉사정신이 있어야 나라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일할 수 있다. 북한의 실체와 생리를 바로 보는 문제는 조국의 분단 현실에서 추가적으로 고려할 요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와 세력을 편 갈라 국력을 소진하고, 협력해야 할 상대와 경계해야 할 상대를 구별하지 못해 외교는 물론이고 내치(內治)의 실패까지 가져오게 된다. 후보 시절 박 당선인은 올바른 국가관을 누차 강조하였기에 필자는 새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국가관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국익이 뭔지 뻔히 알면서도 이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하나는 국익을 위하자니 이를 관철시키는 과정이 험난하고 피곤해 일을 피하는 경우다. 친미니 반미니, 종북세력이니 수구세력이니 분열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쇠고기 개방,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그런 사례 아니었던가. 북한 인권 신장이나 통일 재원 마련을 위한 법안 하나 이제껏 자신 있게 제출하지 못하는 현실도 결국 국가의 관(觀)이 분명치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과장일까. 또 하나는 국가와 국민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고 출세에 이용하려는 경우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 당국이 노린 연방제 통일의 술수에 끌려다니고 핵과 미사일의 위협으로 되돌아온 현금과 전략물자를 무한정 제공하면서 한반도에 평화와 신뢰를 정착시켰다고 국민을 우롱했다. 똑똑하면서 게으른 사람보다도 잘못된 생각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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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필요한 덕목은 일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치열함이다. 대통령 앞에서만 귀에 듣기 좋은 말로 보좌하고 아랫사람에게 궂은일을 떠맡기는 게으른 사람을 많이 보았다. 별로 중요치 않은 세부사항에만 치열하면서 전략의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형식과 표현에 집착해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고위직도 의외로 많다. 예산과 조직은 서로 차지하려고, 힘든 일은 서로 피하려고 부처끼리 다투는데 누구에게도 욕먹기가 싫어 좀처럼 결정을 못 내리는 참모도 여럿 보았다. 부처의 인사 관행과 조직 운영이 기득권과 타성에 젖어 효율을 좀먹고 있는데도,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좋은 게 좋다며 그냥 시간을 보내려면 정무직 공무원만큼 편한 자리도 없다.
부처의 수장들은 부처의 얼굴이기에 앞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개혁주의자여야 한다. 평생 군인으로 봉직하고 외교관으로 일한 사람일지라도, 정무직 외교안보 참모가 되면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친정 조직을 감쌀 때는 감싸더라도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고통을 동반한 변화를 요구하는 데 두려움과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워싱턴으로, 베이징으로, 도쿄로 날아가 상대의 마음을 열도록 해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고 그들을 진정한 친구로 만드는 협상의 치열함도 보여줘야 한다.
예술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주말도 없이 밤늦도록 일하면서 힘든 일을 멋지게 해낸다면 나라에는 얼마나 큰 봉사이고 자신에겐 또 얼마나 큰 보람인가. 그게 애국 공무원의 진면모 아닌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외교안보 참모를 고대한다.
김태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thkim01@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