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다큐 ‘위대한 바빌론’ 제작 김유열 - 김동준 PD
김동준 PD(왼쪽), 김유열 PD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하늘이 번쩍거렸다. “대공포다.” 누군가 외쳤다. 촬영을 마치고 바그다드로 돌아가던 길. 모든 차량이 멈췄다. 촬영팀을 호위하던 이라크 군인들은 “반군이냐”며 무전기로 전투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찔했다.
1월 28∼31일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위대한 바빌론’을 제작한 김유열(48) 김동준 PD(42)가 지난해 1월 이라크 현지에서 겪은 일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원전 6세기 번창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바빌론과 바벨탑의 비밀을 다뤄 화제가 됐다. 30일 오후 서울 EBS 본사에서 두 PD를 만났다.
기원전 604년∼기원전 56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의 그림을 토대로 3D입체 영상으로 복원한 바벨탑. EBS 제공
2012년 1월 3일 오전 10시. 두 PD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설마, 큰 위험은 없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바그다드 시내에 접어들자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폭탄테러도 24건이나 발생했다. ‘목숨 걸고 프로그램 만들게 됐다’는 생각에 안전 전략부터 세웠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일행은 7일 바그다드 남쪽 100km 지점에 위치한 바빌론 유적지로 출발했다. 바빌론은 신(神)의 문이란 뜻이다. 이동경로는 험난했다. 곳곳에서 이라크 정규군과 반군의 전투가 벌어져 방탄차가 없으면 움직이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라크 육군의 경호를 받을 수 있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대형지프 3대가 1t 트럭 분량의 촬영 장비를 실은 제작진 차량을 앞뒤에서 보호했다.
경호를 받았어도 100%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길목마다 설치된 검문소에 대기차량 행렬이 2km가량 늘어서 있었다. 멈춰선 차량들은 폭탄테러의 표적이 되곤 했다. 김동준 PD는 “누군가 가방에 폭탄을 넣고 돌진해 오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가 컸다”며 당시 초조함을 설명했다.
밤에는 호텔 대신 안전가옥에서 자야만 했다. 수시로 터지는 총소리 탓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라크 수도방위사 대원들이 보초까지 섰을 정도. 김유열 PD는 “이라크 내 유적지는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서구학자나 방송사들이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겁을 냈기 때문”이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지만 바벨탑 다큐멘터리는 적다 보니 위험해도 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관심을 보이더군요. 전쟁으로 파괴돼 복원해야 할 문화재가 많은데 한국 방송사가 관심을 가져주니 반가웠던 거죠. 경호를 공짜로 받게 된 배경입니다.”(김동준 PD)
○ 바벨탑과 후세인궁, 그리고 권력무상
바빌론 유적지에 도착해 보니 길이 11.3km 외성(外城)과 높이 18m의 이슈타르 문(門)은 사라진 채 성터와 하부 건축물만 남아 있었다. 유적지 옆으로는 궁궐이 보였다. 바빌론 왕국을 동경했던 사담 후세인이 건축한 것이다. 겉모습은 웅장했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없고 벽마다 온갖 낙서로 도배돼 있었다. 김유열 PD는 “후세인궁과 바벨탑의 운명이 비슷했다. 권력무상”이라고 말했다.
바빌론 유적지 내의 바벨탑 추정지, 아칼구프 지구라트(성탑)를 항공촬영하기 위해 이라크 공군의 헬기 지원도 받았다. 지상에서 반군이 로켓포로 헬기를 공격하기 때문에 이 헬기를 보호하기 위한 헬기도 함께 떴다.
“미얀마 천불천탑의 비밀도 풀고 싶어요. 해외 유명 역사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서양적 관점, 어찌 보면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이제는 한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볼 때예요.”(김유열 PD)
“진시황릉 병마용 아시죠? 중국인도 몰랐던 비밀을 밝혀내려면 인디애나 존스처럼 땅굴을 파서 들어가야겠죠. 하하.”(김동준 PD)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문현경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