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라지다’ 주역 박용수씨 고목나무 꽃피듯 연기혼 불살라
연극 ‘사라지다’에서 늙은 트랜스젠더 말복(왼쪽)으로 파격 변신해 배우의 변신 역시 무죄임을 유감없이 보여준 박용수 씨. 대기만성형 배우인 그는 “타고난 딱딱함을 버리고 유연한 배우가 되기 위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엄숙하기만 했던 내 안의 장난기 어린 아기를 발견해 가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용수(57)는 이름보다 얼굴이 더 유명한 배우였다. 서울대 성악과(바리톤) 출신이란 좋은 학력에 중후하고 훤칠한 외모를 지닌 그는 자신의 말처럼 연극판뿐만 아니라 영화나 TV에서도 “돈 있고, 배운 거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러다 2011년 연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에 출연해 무뚝뚝하고 고집 센 경상도 아버지 역을 맡으며 “고목나무에 연기 꽃이 피었다”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써도 되는 역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늘 표준어 쓰는 군인 장관 교수 이런 역만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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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다섯 편의 연극을 했어요. 전에는 많아야 두 세 편이었는데….”
세밑에 막을 올린 다섯 번째 연극 ‘사라지다’(이해성 작·연출)에서 그는 극적인 변신을 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말복 역을 맡아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복사꽃…’이 그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다면 ‘사라지다’는 그 변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는 손사래 쳤어요. 연기 변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관객의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제 머리통이 연극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큰데 여장을 하면 얼마나 기겁하실까 해서…. 그런데 해성이가 ‘트랜스젠더라고 다 하리수처럼 예쁘고 날씬한 게 아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라면서 설득하더라고요.”
연극은 교통사고로 숨진 동창생 윤주(황은후)의 1주기에 모인 삼십대 중반 네 여성의 감춰진 사연과 윤주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윤주의 이모(생물학적 삼촌)인 말복은 주책 맞고 배운 거 없지만 다섯 동창생의 아픈 비밀을 하나씩 벗겨 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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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가 자신의 영혼을 찾아 나선 나이가 제가 연기에 눈뜬 나이랑 비슷할 겁니다. 저도 삼십대 후반까지 연기가 제대로 안 돼 너무 힘들어 자살할 생각까지 여러 번 했거든요. 나이 마흔을 넘어서야 제가 맡은 배역 속으로 한 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제대로 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이 박용수가 얼마나 자유롭고 유연한 배우가 됐는지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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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2만5000원. 02-758-215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