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좋은 나무 찾아 10만km 누비는 ‘나무꾼’

입력 | 2012-12-26 03:00:00

■ 전국 200여개 단지 조경 디자인한 롯데건설 송재호 씨




20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위치한 ‘신동백 롯데캐슬’ 건설현장에서 송재호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책임이 조경나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 씨는 이 단지에 심어질 나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10만 km 이상 돌아다녔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방과 후 집에 도착하면 책가방을 던져두고 단내가 진동하는 사과밭으로 뛰어갔다. 부족한 일손을 거들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농장일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과수원집 막내아들은 이제 경력 20년의 베테랑 아파트 조경디자이너가 됐다. 그의 손을 거쳐 콘크리트로 뒤덮인 200여 개 아파트단지에 초록색 휴식공간이 만들어졌다.

주인공은 송재호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책임(45). 서울 서초구 잠원동 롯데건설 본사에서 만난 그는 볕에 그을려 까맣게 탄 얼굴이었다. ‘피부가 좋아보인다’는 인사에 “어릴 때부터 밭일을 해서 피부가 검다”고 답했다. 그는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뒤 아파트 조경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그는 e메일 닉네임을 ‘나무꾼’으로 지을 정도로 나무 사랑에 빠져 산다.

그의 일과는 아파트단지에 심을 만한 좋은 나무 찾기다. 휴일엔 등산복을 차려 입고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닌다. “부산에 놀러가서도 해운대 앞바다를 구경하기보다는 나무가 있는 산을 둘러보러 다니는 데 시간을 다 씁니다.”

최근에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들어설 아파트(신동백 롯데캐슬·2013년 6월 입주 예정)에 심을 나무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차량 이동거리만 10만 km를 넘어 출장비 신청서를 받아든 직원이 놀랐을 정도다.

좋은 나무를 구하려는 욕심에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있다. “몇 년 전 한 지방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나무를 사려다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거의 몰매를 맞을 뻔했습니다.” 그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덤벼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더 멋지고 특색 있는 나무를 찾으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송 책임의 좋은 조경나무 찾기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도 매년 한 차례 이상 방문한다. 이런 노력들은 2008년 ‘남부 수목도감’이라는 책자로 집대성됐다. 송 책임과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일일이 식물들의 습생을 파악한 정보가 담겨 있다.

롯데건설은 이 책자를 활용해 아파트단지 조경 아이디어를 정한다. 올 6월 입주를 시작한 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 롯데캐슬카이저’도 이런 절차를 거쳤다. 부산 사직운동장의 5배 크기에 아파트 5239채가 들어서는 초대형 단지인 화명 롯데캐슬카이저에 심어진 나무는 모두 85만 그루. 조경비용만 200억 원이 투입됐다. 송 책임은 “서울 등 다른 대도시 아파트단지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 등 이국적인 나무가 많아 입주민들의 호응이 뜨거웠다”고 자랑했다.

송 책임이 선택한 조경나무에는 외형적인 특징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깨알 같이 담겨 있다. 신동백 롯데캐슬에 심어질 수령(樹齡) 1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명력으로 단지 입주민들을 지켜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책임은 “앞으로 풍력 태양열 등 ‘친환경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첨단 조경시설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