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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벌금 대신 노역

입력 | 2012-12-13 03:00:00


부릴 역(役)이란 한자는 예로부터 좋은 의미로 잘 쓰이지 않았다. 부역(賦役) 군역(軍役) 등 백성을 괴롭히는 말에 쓰였다. 맹자는 정치를 하는 대인(大人)과 농업 등에 종사하는 소인(小人)을 구별했다. 대인은 노심(勞心) 즉 마음을 쓰고, 소인은 노력(勞力) 즉 힘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심자는 사람을 부리고(役人) 노력자는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役於人)고 했다. 노역(勞役)은 굳이 ‘강제’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말 자체에 강제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근대식 교도소는 노역장(workhouse)에서 출발했다. 1555년 영국 런던 브라이드웰(Bridewell)에 노역장이 처음 설립됐다. 거지 부랑자 등을 모아 사회로부터 격리하면서 노역을 통해 근면성을 익히고 직업교육을 받게 해 노동시장에 진출시킨다는 취지였다. 브라이드웰은 워낙 유명해서 나중에 그 말 자체가 교도소를 의미하게 됐다. 징역(懲役)은 노역에 처한다는 말이다. 징역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똑같이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금고는 노역을 하지 않는다. 금고형은 드물고 징역형이 대부분이다. 교도소가 본래 노역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벌금형은 징역 금고 등 자유형과 구별되는 재산형이다. 그러나 6개월 이하의 단기로 가둬두는 것은 격리의 효과도 별로 없는 데다 죄질이 더 나쁜 사람들에게 오염될 우려가 있어 오늘날 벌금형이 많이 선고된다. 제1심 형사사건 중 서류만으로 심리해 재산형만 선고하는 약식명령 사건이 85%가 넘고 나머지 공판 사건 중에서도 25% 정도가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벌금형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부자에게는 벌금 액수가 푼돈에 불과해 형벌로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구치소 노역장에 자발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처분 집행 건수는 2008년 2757건, 2009년 2819건, 2010년 2918건, 지난해 3221건으로 매년 늘었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진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2503건이 집행될 정도로 늘었다. 하루 노역은 대개 5만 원으로 친다. 벌금 50만 원이면 노역장 유치 10일 이런 식이다. 일당 5만 원도 벌 자리가 없어 자유를 반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