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양 양수발전소 르포
①양양 양수발전소 직원들이 발전기를 정비하는 모습. 이 발전소에는 설비용량 25만 kW 규모의 발전기가 모두 4기 있다. ②양수발전소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 위아래에 각각 저수지가 있어 전기가 남는 밤에 아래 저수지의 물을 위로 끌어올렸다가 전기가 필요한 낮 시간대에 내려 보내며 발전한다. ③양양 양수발전소의 아래 저수지인 영덕호.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2013년 1월 ○○일, 대한민국이 암흑에 빠졌다. 눈보라를 동반한 50년 만의 강추위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출근길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일과가 시작되자 난방과 조명 수요가 치솟으며 예비전력이 200만 kW 아래로 떨어졌다. 전력수급 경보의 ‘경계’ 단계가 발령된 순간, 낙뢰(落雷)로 송전선로에 이상이 생기면서 각각 100만 kW급인 ○○원자력발전소 1, 2호기가 동시에 가동을 멈췄다. ‘대정전’(블랙아웃)이 생긴 것이다.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한 가상 시나리오다.
○ ‘최초의 전기’를 만드는 양수발전소
하지만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무턱대고 발전소들을 돌리면 될까? 그렇지 않다. 발전소 자체도 거대한 전기제품이고, 대다수 대형 발전소는 발전기 회전자를 전자석으로 만들 전기를 어딘가에서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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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큰 배터리는 설비용량 100만 kW인 강원 양양군 서면의 양양 양수발전소다. 24일 양양 양수발전소 중앙제어실에서는 김외도 과장이 ‘급전지령취급대’라는 이름이 붙은 유선전화기 앞에 앉아 있었다. 블랙아웃 때는 물론 평상시 발전소를 돌려야 할 때도 전력거래소는 이 전화기로 가동을 지시한다. 김 과장은 “단 1초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며 “화장실을 갈 때도 다른 운전원에게 ‘핫라인을 맡아 달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가 있어 정전이 돼도 중앙제어실의 상황판이 꺼지거나 핫라인이 끊기는 일은 없다. 외부 전원이 끊기면 13초 안에 지하 디젤발전기가 돌아가고, 이 전기로 양수발전소를 가동한다. 양양 양수발전소는 항상 디젤발전기용 경유 1만 L를 비축해둔다. 이 디젤발전기가 고장 나면 양수발전소도 돌릴 수 없다.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전국의 비상 디젤발전기만 정비하는 전담 팀을 만들어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수차(水車)를 보려면 높이 6m 정도 되는 지하터널을 따라 2km가량 내려가야 했다. 임도빈 양양 양수발전소 발전운영팀장은 “터널 옆에는 터널과 비슷한 크기의 관이 있다”며 “그 관으로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전기를 만든다”고 말했다. 위아래 저수지 간의 낙차는 819m로 아시아 최대다.
○ “대선 후보, 원전에 대한 생각 바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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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수발전소의 위 저수지는 평소 아무리 전력 상황이 좋지 않아도 최소 1시간 동안 발전소를 돌릴 수 있는 물을 항상 저장한다. 양양 양수발전소는 블랙아웃이 되면 이 물을 다 쓰고 임무를 마친다. 그때쯤이면 영월 복합화력발전소가 양양 양수발전소의 전기를 받아 가동을 시작하게 된다.
한편 김균섭 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자력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선 후보들이 대체로 원전에 비판적이지만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전력공급의 33% 이상을 맡고 있는 원전을 대체하려면 연간 300억 달러(약 33조 원) 정도의 에너지원을 추가로 수입해야 하고 전기료도 지금보다 40∼50% 올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양=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