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3년 가을, 스물한 살의 청년 김창흡은 백마강, 계룡산, 속리산 일대로 여행을 떠났는데 위의 작품은 이때의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김창흡의 발걸음은 오히려 한가롭기만 합니다. 옛사람은 좋은 산을 나설 때 미인(美人)과 헤어진다고 하면서 슬퍼하였지만 김창흡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계룡산을 나서면 다시 속리산을 찾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여행을 떠나면 천 리를 넘겼다고 한 김창흡의 말이 실감이 갑니다. 그토록 자연을 사랑하였던 것이지요. 김창흡은 환갑 가까운 나이에는 아예 설악산 기슭에 집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 무렵 자신의 담박한 삶을 400수 가까운 엄청난 규모의 연작시 ‘갈역잡영(葛驛雜詠)’에 담았는데 그중 한 수가 이러합니다. “심상하게 밥 먹고 사립문 나서면, 그때마다 범나비 나를 따라 나서네. 삼밭 뚫고 보리밭둑 고불고불 걸어가니, 들풀의 가시가 쉬이 옷에 걸리네.(尋常飯後出荊扉 輒有相隨粉蝶飛 穿過麻田(이,타)麥壟 草花芒刺易견衣)” 이런 여유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