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황금 조각, 황홀한 금빛 세상
배움의 열의로 자란 은행나무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대학이었다. 고려의 국자감을 시초로 하고 있으니 현존하는 대학 중 세계 최고(最古)라 할 수 있겠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최고(最高) 교육기관답게 이 곳에서 당대의 수재들이 숙식을 해가며 유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유생(儒生)이라 불렸다.
문과 응시에 많은 편의를 제공 받기도 했던 유생들은 강도 높은 수업을 받으며 엄격하게 생활했다. ‘어그러짐을 바로잡아 고르게 한다’는 ‘성균(成均)’의 의미를 실천하듯 유생들은 왕에게 직접 상소를 올리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권당(捲堂)’을 하며 나라의 부당한 처사나 바르지 못한 정치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권당을 한 횟수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될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 영·정조시대에 권당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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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오묘한 공존
성균관의 나무 중에 빠뜨리기 쉬운 것이 하나 있어 끝으로 소개한다. 바로 대성전 서측 담 너머 대학당(戴學堂) 앞에 서 있는 주목(朱木)이다. 대학당은 성균관의 남자 종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대성전이나 명륜당 마당의 쟁쟁하고 커다란 나무들과 달리 이곳에 있는 주목은 그저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자라온 듯 자그마한 모습이다. 게다가 주목 특유의 꼿꼿한 모습이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러진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래도 꺾어진 채로 꿋꿋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실로 놀랍다. 본래 주목이란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목재의 수명도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불리는 나무가 아니던가. 그에 걸맞게 대학당 앞 주목은 살아 있는 모습과 죽은 모습이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로 성균관의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성균관의 고즈넉한 경내를 천천히 산책했다. 다양한 빛깔의 단풍들이 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신중하게 은행잎 하나를 골랐다. 햇살 아래 비추어본 은행잎의 노란 빛깔은 더없이 투명했다. 들고 있던 작은 스케치북에 끼워 넣었다. 마치 황금조각이라도 얻은 것처럼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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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