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큰 어른 故 신태범 선생 탄생 100주년 추모식
인천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태범선생(1912∼2001)
인천의 큰 어른으로 통하던 고(故) 신태범 선생(1912∼2001)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아 그의 영향을 받은 인천지역 각계 인사들이 6일 인천 중구 항동 파라다이스 오림포스호텔에서 추모 모임을 열었다. 1940∼2000년대 언론 등에 기고한 신 선생의 글을 모은 유고집 ‘한옹 신태범 박사의 인천 사랑’의 출판 기념회를 겸한 자리였다. ‘한옹 탄생 100주년 추모 모임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이날 모임에는 송영길 인천시장과 원혜영, 문병호 의원 등 정치인을 비롯해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이기인 대한노인회 인천연합회장, 이귀례 대한차문화협회 이사장, 유훈 인천향우회장 등 각계 인사 120명가량이 참석했다.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 박사학위까지 받은 신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신 박사’로 불렸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1942년 인천 옛 도심권인 중앙동에 ‘신 외과병원’을 개원한 뒤 명의로 이름을 떨쳤다.
183cm, 90kg의 큰 체격이었던 신 선생은 대학생 때 일본 도쿄의 빙상대회에 참가한 아이스하키 선수였고 유도, 검도 유단자였을 정도로 스포츠광이었다. 또 문예지를 창간하는가 하면 외교, 역사, 지리에도 해박했다.
그의 외과병원 2층은 ‘인천 사랑방’ 구실을 했다.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이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면서 대담을 나누는 장소였다. 신 박사가 강연을 하고, 진로 상담도 해줘 따르던 후배가 많았다. 신 박사는 6·25전쟁 이후 인천체육회장, 인천시교육위원, 인천시의사회 회장을 지내다 1958년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차점 낙선했다.
이후 인천시 행정자문에 응하면서 집필활동도 왕성하게 벌였다. 수필집 ‘반사경’, 인천 향토사인 ‘인천 한세기’와 ‘개항 후의 인천 풍경’, 식문화를 소개한 ‘먹는 재미, 사는 재미’ 등을 출간했다.
새얼문화재단 지 이사장은 “각 방면에 지식과 교양을 많이 갖춘 신 선생으로부터 신 지식을 얻기 위해 병원 2층 ‘사랑방’을 자주 찾았다”며 “보석과 같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듣지 못해 안타깝다”고 회상했다.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은 “따듯한 인간미와 유려한 필체가 돋보이는 책을 많이 저술했다”고 칭송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