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협동조합 ‘미그로’ 年매출 32조원
유럽 선진국에서는 협동조합들이 대기업 마트와 경쟁할 만큼 탄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형 소비자협동조합인 ‘이페르콥’ 매장의 모습. 환경과 사람들 제공
이탈리아 동북부의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콥이탈리아’는 지난해 기준 매장 수만 150개, 연매출은 19억2000만 유로(약 2조7264억 원)로 코스트코 한국법인의 연간 매출(약 2조 원)보다 크다.
스위스에서도 발음만 조금 다른 ‘쿱(Coop)’이 슈퍼마켓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스위스 소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미그로(Migro)’와 ‘쿱’은 모두 협동조합이다. 스위스 최대 도시 취리히의 중앙역부터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규모만 다를 뿐 두 조합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업계 1위 미그로는 스위스 인구 760만 명 중 200만 명이 조합원이며 연간 매출액은 250억 스위스프랑(약 32조 원)이다. 고용인원은 8만3000명으로 스위스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곳이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팀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창단 이후 2006년까지 유니폼에 광고를 붙이지 않았다. 구단 주인인 17만 명의 시민조합원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는 유니세프(UNICEF) 로고를 유니폼에 새기고 구단 수익의 0.7%를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4년마다 직접 단장을 선출한다.
이 밖에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 오렌지 등 과일의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선키스트, 키위 재배로 잘 알려진 뉴질랜드 제스프리 등도 모두 협동조합이다.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는 한국은 유럽의 선진국과 달리 협동조합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한국의 협동조합들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비즈니스 모델’로서 경제적 이윤 창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했다. 장승권 성공회대 교수(경영학)는 “해외에서는 협동조합을 ‘협동하는 기업(cooperative enterprise)’이라고 부른다”며 “자칫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좋은 일만 하려다간 조합이 금방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5인 이상이 모이면 결성이 가능해지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실제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의 경우 300인 이상이 3000만 원을 출자하면 병원 인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협동조합의 취지와 정반대로 운영되는 ‘사무장병원(일반인이 의사를 고용해 세운 불법 병원)’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노려 지원비만 챙기고 ‘개점휴업’하는 협동조합이 난립할 수도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