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삶의 출구전략’이라는 것은 어떻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존엄을 지키며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도 존엄사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 나라 의료기관에서 통용되는 생전 유언서(우리나라의 사전의료의향서)의 제목이 ‘파이널 엑시트(Final Exit)’이다. 이 서류에는 인생의 마지막 출구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가족과 의사에게 당부하는 주요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출구전략’에 인간의 존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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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여러 나라의 존엄사협회도 상징적으로 ‘엑시트(Exit)’라는 단어를 단체 이름에 붙여 쓰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인생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출구를 향해 달리는 셈이고 사방 어디나 출구가 아닌 곳이 없으니 늘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출구에서는 예외 없이 사용되는 언어가 인간의 존엄(dignity)이었다.
그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를 몸으로 느낀 것은 올해 4월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응급실 게시판에서 나는 이런 글을 읽었다.
‘우리는 환자의 존엄을 지킨다.’
이 짧은 메시지가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진을 경외의 시선으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주말에 일어난 교통사고 환자와 일반 응급환자로 어수선한 병원에서 존엄은 환자를 대하는 기본 가치였다. 한국 교포들이 많이 몰려 있는 플러싱의 매너요양병원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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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환자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안한 투병생활을 하도록 돌보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존엄을 갖춘 여생을 보냅니다.’ 이 문구에 대한 힝켈먼 병원장의 따뜻한 설명도 감동을 주었다.
존엄사는 그들의 일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구태여 ‘존엄’을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거기에는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부드러운 미소가 있었다. 그림 같은 장면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봉사였다. 해가 질 무렵 잔디밭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말기 환자들과 어린이 봉사자들의 긴 그림자가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 있다.
미국의 존엄사와 한국의 존엄사는 어떻게 다를까. 왜 한국에서는 존엄사라는 어휘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될까에 나는 많은 궁금증을 가져 왔다.
미국은 인권사상의 뿌리나 개인주의 역사가 우리와 다르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존엄사(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의한 사망) 개념을 그들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1997년 미국 오리건, 워싱턴 주 등이 제정) 위에 올려놓고 해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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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여러 곳에 있는 요양병원을 포함해 각급 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자연사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를 미국처럼 자연사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환자를 정성껏 돌보지 않고 팽개친다는 뉘앙스로 풍자될 수 있어 기피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단어가 존엄사였다. 일본이 1983년부터 영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예민한 해석
최철주 칼럼니스트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