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미국 메이저리그는 피바람 부는 강호다. 언제 어디서 비수가 날아올지 모른다. 내로라하는 천하의 야구 고수가 즐비하다. ‘더 빠르고, 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시속 160km에 가까운 투수들이 즐비하다. 그런 공을 담장 너머로 펑펑 쳐 내는 금강역사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모두 근육질에 범강장달이다.
너클볼은 느릿느릿 한가롭다. 보통 시속 95∼125km에 불과하다. 맹물처럼 밋밋하다. 너무 느려 터져서 킥! 킥! 웃음이 나온다. 헌데 어럽쇼! 천하의 고수들이 그 공에 속수무책 나가떨어진다. 눈 뻔히 뜬 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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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키는 올해 직구인 패스트볼(14%)과 너클볼(86%) 딱 두 가지만 섞어 던졌다. 타자들은 알고도 헛방치기 일쑤였다. 너클볼은 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간다. 한여름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처럼 팔랑팔랑 춤추며 간다. 흐느적흐느적 ‘강호의 취권’이다. 재즈다. 과연 나비가 족집게로 잡힐까?
너클(knuckle)은 ‘손가락관절’을 뜻한다. 손가락을 구부려 공을 잡는다. 검지 중지 약지의 손톱 끝으로 튕기듯 밀어 던진다. 손목으로 채지 않는다. 그래서 무회전이다. 맞아도 반발력이 없어 멀리 나가지 않는다. 무회전공은 타자 앞에서 제멋대로 천방지축 변한다. 공기 흐름에 따라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던지는 투수도, 받는 포수도 알 수 없다. 산전수전 겪은 캐처도 툭하면 놓친다.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7·레알 마드리드)의 무회전 프리킥(시속 110km)이 무서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골대 부근에서 좌우상하 수시로 유령처럼 움직인다. 골키퍼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다. 호날두는 축구공 배꼽 아래를 발가락으로 강하게 밀어 찬다.
너클볼은 ‘늙은 투수의 공’이다. 속도와 힘에 대한 욕망을 지워야 가능하다. 강한 어깨도 필요 없다. 너클볼 투수론 처음 명예의 전당에 오른 호이트 윌헴은 마흔아홉까지 던졌다. 너클볼로만 통산 318승(평균자책점 3.35)을 올린 필 니크로도 마흔여덟에 은퇴했다. 그렇다. 너클볼은 아이들 돌팔매질하듯 무심하게 던져야 통한다. 힘이 들어가면 끝장이다. 공에 회전이 걸려, 된통 얻어맞는다. 메이저리그 역대 너클볼 투수는 대부분 한물간 변방 인생들이었다. 늙고 몸이 고장 나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강속구 투수 디키도 서른하나에 너클볼로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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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를 꼿꼿이 치켜든 독 오른 뱀 앞에/개구리 홀로 얼어붙은 듯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비늘 돋친 이 독한 세상마저 잊어버리려는 듯/투명한 눈을 반쯤 내려감은 채/마른번개 널름거리는 캄캄한 아가리 속 꿈틀거리는/욕망이여, 온몸 징그러운 무늬의 삶이여/예서 길이 끝나는구나’(송찬호 ‘門앞에서’ 부분)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