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재단-SPC그룹, 지적장애인 재활 ‘행복한 베이커리’ 1호점
26일 문을 연 ‘행복한 베이커리 카페’ 1호점의 지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개점식 참석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윤우 씨, 김현아 양,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 조상호 SPC그룹 총괄사장, 한희정 씨, 이혜윤 양, 경현옥 애덕의 집 원장. SPC그룹 제공
26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장애인복지시설 푸르메센터에서 열린 ‘행복한 베이커리 카페’ 1호점 개점식. 지적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게 된 이혜윤 양(19·서울여고 3년)은 직원 가족대표로 나선 아버지 이모 씨(52)의 인사말을 듣다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 감추고 싶었던 가족의 비밀
혜윤 양의 장애를 숨긴 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딸의 장애가 알려지는 것이 가족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이 씨는 “‘가족대표로 인사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듣고 망설여졌지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딸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명함을 건네면서 “가족을 위해 나의 이름과 직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돌 무렵이면 걷기 시작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혜윤 양은 생후 1년 4개월이 돼서야 겨우 일어설 정도로 발달이 더뎠다. ‘엄마’ ‘아빠’ 같은 간단한 말도 두 돌이 넘도록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또래와의 격차가 더 커졌지만 이 씨 부부는 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야금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딸을 특수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인 국악전통예술중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이 씨 부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혜윤 양은 고교 입시에 실패했고 결국 특수학급이 있는 고교로 진학했다. 이 씨는 “고교 입학 후에야 혜윤이가 더 이상 정상적인 아이들과 경쟁하며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지적장애 등급을 받았다”며 “부모로서 딸의 장애는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 “내가 떠난 후에도 딸이 행복했으면…”
이 씨는 “저와 아내가 없어도 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 씨 부부가 딸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커피 공부를 시작한 뒤 카페를 여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씨는 “딸이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서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며 “아내가 ‘내가 카페를 열어 혜윤이를 데리고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해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카페 100호점 열면 점장 할래요.”
행복한 베이커리는 혜윤 양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푸르메재단과 SPC그룹(회장 허영인)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애덕의 집 소울베이커리’와 손잡고 시작한 사업이다. 푸르메재단이 장소 제공과 운영, 애덕의집이 직업교육과 빵 생산, SPC그룹이 각종 물품 지원과 매장 운영 노하우 전수를 맡았다.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성공회 주교)은 “장애인이 직업을 갖는 일은 ‘사람’이 되는 소중한 일인데 대선후보들이 이 문제에는 너무 무관심하다”며 “카페가 번창할 수 있도록 이곳의 빵과 커피를 널리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