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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덫, 관료주의
왜 해군본부는 처음에 심스 중위의 제안을 묵살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까. 혁신과 발전을 저해하는 개인적, 조직적 문제점의 대부분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심스는 본부에서 7500km나 떨어진 남중국해의 함상에서 일하는 하급 장교였다. 해군 병기의 개선을 책임지는 곳은 본부의 병참국이었으며, 충성심과 복종은 해군의 중요한 덕목이자 위대한 전통이었다. 해군본부의 입장에서 볼 때 해군의 전투력을 결정하는 것은 함장들의 항해 기술과 지휘 능력이었다. 함장들이야말로 해군의 핵심이자 본질이었고, 이를 훼손하고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기술적인 변화와 혁신은 해군의 핵심과 본질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만 수용됐다. 병사들의 사격 능력은 훈련으로만 끌어올릴 수 있는데 쓸데없이 이상한 장치를 만들어 주면 병사들이 훈련을 게을리하고, 함장들의 능력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도 없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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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스는 미 해군의 고위 장성들이 대통령의 권위에 편승한 초급 장교의 발명품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장치를 무조건 사용하도록 강제하지 않았다. 대신 함정들 간 사격대회를 열어 함장들 스스로가 이 기술을 찾아 쓰도록 유도했다. 그의 장치를 사용한 함정들이 기존 방법을 고수한 함정들에 비해 훨씬 나은 결과를 내자 미 해군 내에 자연스럽게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그가 개발한 장치는 함장들의 지휘 능력을 훼손하지 않았고 충성심이 흐려지도록 하지도 않았다. 만약 심스가 자신이 개발한 장치를 무조건 사용하도록 강제했다면 아마 해군본부와 함장들의 저항이 훨씬 심했을 것이다. 소총만으로 사격한 결과가 그의 장치를 사용할 때보다 더 잘 나오도록 온갖 강압과 공모와 조작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혁신적 기술이 보급되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 정체성과 혁신
원래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정체성은 한 개인이 타인과는 구별되는 어떤 고유한 의미를 갖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다룰 때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집단이나 조직에서 정체성은 사명이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해주는 긍정적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요하지 않은 외형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체성은 빠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될 때 저항하는 힘이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결과를 튼튼하게 만들며,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외형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신속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옳은 방향으로 정체성이 발현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는 사람이라면 심스 중위처럼 조직의 정체성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 이 기사의 전문은 DBR(동아비즈니스 리뷰) 11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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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2호(2012년 9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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