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는 ‘생로병사의 리듬’… 태어난 시간이 중요
고미숙 고전평론가
태아 적엔 엄마와 심장이 연결되어 있어서 단전호흡을 한다. 그런데 엄마 배 속을 나오면서, 즉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의 세계로 넘어오는 순간 폐호흡으로 바뀐다. 태어나자마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때 우주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아기의 신체에 각인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주팔자다. 존재와 우주 사이의 첫 번째 마주침, 그 ‘인증 샷’이라고나 할까.
하늘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황도라 한다. 황도 360도를 15도씩 나누면 24개의 마디가 생긴다. 24절기가 바로 이 마디에 붙인 이름이다. 절기의 변화에 따라 천지의 기운 혹은 물리적 배치가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개의 별이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다. 이들의 밀고 당기는 역학적 배치가 팔자의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우주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우주의 기운이란 바로 별들의 기운이다. 인간은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가 서양 점성술이나 동양의 명리학이나 같다.”(조용헌 ‘한국의 역학’)
여덟 개의 카드 가운데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온도다. 즉 어떤 계절, 어떤 시간에 태어났는가가 결정적 단서다. 예를 들어 한여름의 정오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몸 안에 엄청난 불기운이 이글거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겨울 새벽에 태어난 경우는? 차가운 물기운으로 충만하다. 불기운이 세면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는 기운이 강하고 물기운이 강하면 속으로 갈무리하는 성향이 강하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벌여놓고 뒷수습을 잘 못하는 대신 뒤끝이 없고, 후자는 마무리를 잘하는 편이지만 대신 뒤끝이 길다. 물론 이 사이에 위계나 서열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걸 바탕으로 몸의 구조와 생리, 성격과 인생관 등 다양한 항목이 계열화된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인연을 불러온다. 관계와 사건과 인연, 그 접속과 변이가 바로 인생, 아니 팔자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