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이승우 지음/368쪽·1만3000원·민음사
1960∼1980년대 혼란했던 사회 속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을 그린 소설은 많다. 이 작가는 과거 참혹했던 현실에 대한 고발을 신화적 종교적으로 풀어내 색다른 맛을 준다. 형이상학적인 소설 쓰기를 즐겨하는 작가의 색깔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서해가 보이는 궁벽한 산 정상에 수도원이 있다.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으로 불리는 이곳은 세상과 단절한 채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작품은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사연을 얽는데, ‘후’와 ‘한정효’의 얘기로 압축할 수 있다.
고결한 종교나 사랑이 크고 작은 권력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을 이 작품은 세밀하게 보여준다. 작중 인물들의 고뇌와 번민이 성경 구절들과 맞물리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후’의 고민이 사무엘하 13장, 자기 친동생을 겁탈한 이복형제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과 연결되는 점은 압권이다. 누이에 대한 복수가 결국은 누이에 대한 남모를 연정에서 나왔다는 것. 이는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까지 확장된다.
종교와 인간 본성에 관한 고민들이 깊게 배어 있지만 지루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도원을 둘러싼 비밀을 캐나가는 추리물에 가깝다. 특히 수도원 지하 72개 방에 새겨진 벽서(壁書), 그리고 형체도 없이 사라진 수도사 수십 명의 행적을 쫓는 과정은 마지막까지 흡입력을 잃지 않는다.
다만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구구절절 설명하는 듯한 기술방식에는 맥이 풀린다. 종교적 환상적 색채가 짙었던 작품의 연무(煙霧)가 순식간에 걷히는 바람에 책의 여운까지 옅어진다. 복잡한 스토리라인 때문인지 책의 말미에 새 장을 시작하며 앞선 줄거리들을 소개했는데 ‘과도한 친절’로 읽힌다. 작품의 진지한 메시지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드라마의 ‘전편 보기’를 보는 듯한 인상이 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