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고미석]베스트셀러 조작

입력 | 2012-08-30 03:00:00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초상이 들어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부터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웠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은 덕에 문필가 교육자 발명가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는 성공한 출판인이었다. 실용적 지혜와 명언을 곁들인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란 책을 1732년부터 1758년까지 해마다 펴내면서 큰돈을 벌었다. 프랭클린은 참신한 기획으로 당대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는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출판인들이 존재한다. 최근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자음과모음사’에서 펴낸 산문집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에 대해 ‘사재기 의심’ 결정을 내리면서 출판계의 고질적 관행이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됐다. 출판사 측은 부인하지만 여러 사람이 책을 반복 구매하고 같은 주소지에서 받아본 것이 확인돼 과태료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다. 사재기 의혹은 종종 제기됐다. 2005년 한국출판인회의가 사재기 의혹 도서 5종을 공개한 적이 있었고, 2007년에는 ‘알바’생들이 한 출판사의 책을 사재기하는 현장이 적발된 적도 있다.

▷도서 사재기는 출판사가 자신들이 펴낸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기 위해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책이라는 사실에 호기심과 믿음을 갖고 책을 구매한 독자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기행위다. 이를 막기 위해 2007년 설립된 사재기 신고센터는 2008년부터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이런 기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재기 행위가 이뤄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베스트셀러 조작은 책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 그렇지 않아도 책을 멀리하는 사회 분위기를 더 부채질할 수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우리의 독서 문화는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일부 출판사들은 책방에서 사온 책에 찍힌 서점의 도장을 특수약물로 지우거나, 밑부분만 2∼3mm 잘라낸 채 다시 출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차라리 그런 정성으로 알찬 책을 낸다면 진짜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출판인들은 프랭클린의 자세에서 배워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