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사회부 차장
흉악범을 애들 다루듯 하던 강력반 반장. 조폭 검거를 위해 출동하다 마주치면 “다녀와서 소주나 한잔해”라며 씩 웃던 베테랑 형사. 그런 그가 그날은 경찰서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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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고 했다. 사건 때문에 며칠째 집에도 못 간 그는 점심에 경찰서로 찾아온 아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고작이었다. 그때 마신 술 때문에 감정이 ‘울컥’했던 것 같다.
취재수첩에도 적어놓지 않았던 10여 년 전 일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최근 어처구니없는 강력범죄가 계속되면서 속된 말로 ‘닦달’ 당하고 있을 형사들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면 언론과 국민은 치안 부재를 질타한다. 뒤질세라 수뇌부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전담반 구성 등 온갖 대책을 내놓는다. 그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경찰 안에서 ‘형사’가 어떤 위상인지 알면 그런 질책과 대책이 얼마나 공허한지 쉽게 알 수 있다.
형사가 멋진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 때문인 것 같다. 정보과, 공보과 경찰관이 주인공인 영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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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인기 부서는 승진이 빠르거나 보장된 공보 정보 감사, 비교적 험하지 않고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외사나 돈과 관련된 경무 같은 분야다. ‘형사’는 일도 힘든 데다 승진 자리도 적고, 자칫하면 구설에 오르기도 쉬워 소위 똑똑한 경찰관은 잘 지원하지 않는다. 일부 개선이 있었다지만 이런 현실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구성원의 마음이 이런데 아무리 강력범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들 ‘땜질’ 외에 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와 국민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증원을 요청하면 언제나 ‘공무원 정원’이라는 여론과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텅 빈 공항과 고속도로는 인프라라고 생각하면서 치안이 ‘인프라’라는 생각은 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치안이 보장되지 않아도 경호원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부자나 권력자뿐이다. 치안은 스스로 신변안전을 확보할 수단이 없는 일반 시민의 안전까지 보장해주는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자녀의 안전을 걱정해 밤늦게 학원 앞에 부모들의 승용차가 줄을 서는 것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우리 가게에 더 자주 오는 것은 경찰차가 아니라 사설 경비회사 순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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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사회부 차장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