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 종목 보치아 국가대표, 뇌성마비 김한수와 엄마 코치의 도전
남들보다 발달이 조금 늦은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윤추자 씨(52)는 지독한 난산 끝에 결혼 3년 만에 첫 아들 김한수(20)를 얻었다. 세상에 나온 아이는 무호흡 증상에 울지도 않았다. 인지 반응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나왔지만 아들은 이상했다. 돌이 지나도 걷기는커녕 목도 가누지 못했다. 엄마는 괜찮다는 병원은 모두 다녔다. 민간요법도 무수히 받았고 꾸준히 언어 치료도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의 몸은 커졌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무렵, 엄마는 그때서야 아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특수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애인 진단서가 필요했다. 뇌성마비 1급.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들과 함께 장애인올림픽(이하 패럴림픽)이 열리는 런던에 왔다. 코치 자격으로 동행했다. 아들은 보치아 BC3등급(최중증) 국가대표다.
장애인체육에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해 보조 요원 겸 코치가 있는 종목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가족이 많다. 눈빛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사격 이지석과 그의 아내 박경순 씨는 부부가 금메달을 합작했다. 단 모든 결정은 선수가 한다. 보조요원은 경기 중 말을 할 수 없고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눈짓과 몸짓으로 겨우 의사 교환을 해도 6분 안에 6개의 공을 표적구를 향해 던지는 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죠. 처음 2년 동안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가장 먼저 탈락했고 한수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어요.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읽었던 걸까. 김한수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6년 부산에서 열린 한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전까지는 8강에 올랐던 게 최고 성적이었다. 엄마는 이를 ‘중간 단계 없이 위로 올라간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듬해 전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한수도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을 좋아했죠. 그만두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요.”
인터뷰 내내 아들은 엄마 곁을 지켰다. “보치아가 좋아?”라고 묻자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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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1, 2급만 참가할 수 있는 스포츠다. 흰 표적구에 공 6개를 차례로 던져 표적구로부터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하여 승패를 겨룬다. 야구공보다 조금 큰 공은 양가죽으로 제작되는데 무게는 275g, 둘레는 270mm다. 장애 정도가 덜한 BC1, BC2등급은 볼링을 하듯 손으로 공을 던지고 가장 중증인 BC3등급은 홈통을 이용해 공의 세기와 방향을 결정한다. 손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입으로 보조기구를 사용한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상대의 길을 미리 차단하는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사진은 국가대표 정호원 선수.
런던=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