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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꺾은 ‘대학생 구두 디자이너’

입력 | 2012-08-14 03:00:00

롯데百 공모전 대상 정지아 씨
“신발매장 알바하며 꿈 키우고 구청 공짜교육으로 실력 다져”




구두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정지아 씨가 자신의 구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정 씨가 디자인한 구두는 롯데백화점 ‘슈콤마보니’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제공

“손님, 한 번 신어보세요.”

“아이고, 신으면 사고 싶어질 것 같아요. 열심히 모아서 다시 올게요.”

2010년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게 죄송스러워 시작한 백화점 구두 판매 아르바이트 첫날 대학생 정지아 씨(23)는 ‘큰 것’을 얻었다. 명품 구두 브랜드 ‘마놀로블라닉’ 매장에서 선망의 눈길로 구두를 바라보는 50대 여성을 보면서 운명처럼 ‘나도 사람들이 저렇게 원하는 구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구두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정 씨는 올해 롯데백화점이 주관하고 탠디, 소다, 미소페 등 15개 구두 브랜드가 후원한 ‘제2회 롯데백화점 구두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번 공모전은 ‘감성적인 워커부츠, 펌프스 디자인’을 주제로 현직 구두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프로페셔널부’와 일반인, 대학생 등이 참여하는 ‘아마추어부’로 나눠 진행됐다. 모두 537명이 지원했다. 그중 소비자와 전문가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 한 개를 대상으로 뽑았다. 정 씨가 프로 디자이너를 제친 것이다.

정 씨가 구두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지만 의류 중심이라서 구두 디자인을 배우지 못했다. 기업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국내 구두 업계는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인턴을 뽑는 일이 드물었고, 정규직은 경력직을 선호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값비싼 학원밖에 없었다. 정 씨는 “학원은 월 40만∼50만 원을 내고 6∼9개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며 “사립대에 다니는 것도 모자라 부모님께 학원비 부담까지 안겨드릴 수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초 서울 성동구와 한국패션협회가 주관하는 ‘제1회 피혁잡화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무료로 3개월간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구두 업계의 거의 유일한 정기 공모전인 롯데 공모전도 여기서 알게 됐다.

정 씨는 “문득 ‘캣우먼’이 구두를 신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12cm 굽에 뾰족한 징을 박아 연출했는데 대상을 받게 돼 의외였다”고 말했다. 그는 대상 수상으로 구두 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생 수상자도 인턴을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정 씨는 “디자이너로서 유학이 필수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영세한 기업에서라도 실무를 빨리 익히는 게 더 많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상황에도 잘 어울리는 구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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