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첨부파일을 클릭하자 그래프 하나가 나왔다. 진료과 명칭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X축은 ‘간지’, Y축은 ‘수입’이라고 표시돼 있다. 간지는 폼이나 멋을 뜻하는 속어. 그래프가 보여주는 건 진료과별 실익이었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할수록 돈도 많이 벌고 의사로서 폼도 난다는 뜻이다. 성형외과가 단연 1위다. 그 다음은 안과. 피부과는 안과보다 폼은 덜 나지만 수입은 많은 영역에 있다. 이들 과를 포함해 정형외과, 정신과, 신경외과,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 일반내과가 폼도 나고 돈도 잘 버는 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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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한쪽 구석엔 ‘인턴과 공보의가 전공을 선택할 때 참고하라’는 안내 글이 달려 있다. 그래프 작성자는 수입과 폼이 젊은 의사들의 전공 선택 기준일 거라 생각했나 보다.
틀렸다. 전공 선택에서 폼은 기준에 들어가지 못한다. 올해 진료과목별 전공의 지원 현황을 보면 분명하다. 폼이 난다는 흉부외과, 외과는 미달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정신과,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에는 응시자가 폭주했다. 가장 폼이 나지 않는다는 영상의학과와 재활의학과에도 응시자가 몰렸다. 실제론 안정성과 수입이 전공 선택의 기준인 셈이다.
그래프의 결말. 그럼 누가 가장 돈을 많이 벌까. 병원 사무장이다. 사무장은 그래프의 가장 상단에 있다. 그 어떤 의사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젊은 의사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사무장보다 못하다는 패배감과 자기 비하였다.
기자는 “요즘 후배들은 돈만 밝혀”라며 혀를 차는 의대 교수들을 간혹 봐왔다. 어디 의사만 그런가.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태가 아닌가. 하지만 선배 의사들은 그들이 후배 의사들을 ‘패배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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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 환자를 살리지 못한 자괴감에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의사를 안다. 그는 다른 환자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단다. 목숨을 살린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없는 의사는 더이상 의사가 아니라는 그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전공의에 대한 폭행은 교육과 훈련이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명백한 범죄행위다.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이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후배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선배 의사들부터 자정 선언을 하라. 대한의사협회가 나서라. 의사들이 국민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