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그로부터 1년이 흘러 최나연은 지난해 수모를 안았던 바로 그 US여자오픈에서 어린아이 상반신만 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자신의 우상 박세리가 14년 전 맨발 투혼 끝에 우승했던 코스에서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오르는 황홀한 기쁨을 누렸다.
최나연은 2008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 후 이번 US여자오픈까지 101개 대회에서 예선 탈락은 두 번밖에 없다. 통산 6승의 기록만큼이나 자랑할 만하다. 첫 번째 컷 통과에 실패한 때는 2010년 역시 메이저대회였던 LPGA챔피언십이었다. 63개 대회 만의 첫 경험이라 충격이 컸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인 그 다음 주 코닝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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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은 달랐다. 예선 탈락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일단 암초에 부딪혀도 헤쳐 나갔다. 탄탄한 기본기뿐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 컨트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최나연은 “부모님이 안 계시느냐”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또래들과 달리 홀로 골프 훈련을 할 때가 많아서였다. 한창 응석을 부릴 5학년 때 인도네시아 전지훈련을 가기 위해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6학년이 돼서는 제주에서 70일 동안 가족과 떨어져 공을 쳤다. “골프장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 아빠가 택시 타라고 5만 원 주신 적도 있어요.”
LPGA투어 진출 후 무관(無冠)에 그쳤던 2009년 그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부모님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뭐가 되든 홀로 해볼게요.” 그로부터 몇 달 후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우승을 이뤘다. 외롭고 힘들어도 목표를 향한 일념으로 버텼다.
자립심이 강한 최나연이 몇 해 전 불쑥 평소 거의 하지 않던 아버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아빠는 대회 기간 잘 치든 못 치든 일단 집에 오면 골프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너무 편했죠. 지난 일은 빨리 잊고 새롭게 준비할 수 있었죠.” 그가 이번 US여자오픈에서 선두로 출발한 마지막 라운드에 줄곧 평정심을 유지했고 10번홀 트리플 보기에도 물병 한 병 집어던지고는 흔들리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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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만사가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에게나 실패와 좌절은 찾아온다.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건 역시 마음에 달려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