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책으로 종업원을 모두 내보낸 정 씨는 아내에게 조리를 맡기고 자신이 서빙과 청소를 도맡으며 버텼다. 두 사람 인건비도 안 되는 수입으로 아들 대학 학비를 대고, 은행 빚은 이자만 근근이 갚는 상황이 이어졌다. 견디다 못한 정 씨는 최근 담보로 잡힌 아파트를 팔아 원금을 갚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예순을 코앞에 두고 내 집을 처분하려니 눈물이 난다”고 털어놨다.
국가적 사회적으로 준비가 미흡한 가운데 본격화한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취업-금융-부동산시장 등 경제 전반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동안 정체됐던 자영업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고, 부실 위험이 큰 고령층의 가계부채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들이 부채를 갚기 위해 보유 주택을 대거 매물로 내놓으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시장에도 타격이 우려된다.
○ 자영업 창업에 몰리는 베이비부머
주된 원인은 최근 베이비부머들의 집단 퇴직으로 자영업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600만 명을 넘나들던 자영업자는 지난해 1월 528만 명까지 줄었다가 올 5월 585만 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창업이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진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통계청이 지난해 신규 사업체의 영업활동을 분석한 결과 베이비부머들이 주로 진출하는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의 3차 연도 생존율은 각각 43.3%, 44.5%에 그쳤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3년도 안 돼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펴낸 보고서에서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자영업자 수를 증가시키는 효과는 앞으로도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들은 대부분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 집중돼 대규모 폐업이나 대출 부실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 갈 곳 없어 방황하는 베이비부머들
창업 실패는 가계 빚 증가와 개인 부도로 이어져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처분 압력을 높이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에서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46.4%로 2003년(33.2%)에 비해 13.2%포인트 올랐다.
특히 고령층의 빚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이 많아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대출이 부실해질 우려가 크다. 부동산업계는 최근 이들이 빚 상환과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 다운사이징(주택 크기 축소)’에 나서면서 집값 하락세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퇴직자들의 자영업 진출은 정부의 고용지표에 대한 ‘착시 효과’도 일으킨다. 5월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7만2000명이 늘었지만 이 중 60%인 28만6000명은 영세 자영업체나 다름없는 ‘종사자가 1∼4명인 사업체’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임금 수준이나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는데도 전체 고용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재취업이 자유롭고 연금 혜택도 높은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은 은퇴자의 자영업 창업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베이비부머를 위해 안정적인 근로시장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앞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 베이비부머 ::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