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보협정 파문 8일만에 사의… 靑 “총리-장관까지 책임질 일은 아니다”
현 정부의 외교 실세인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사진)이 한일 정보보호협정 ‘밀실 처리’ 파문의 책임을 지고 5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달 27일 협정이 국무회의(26일)에서 비공개 의결된 사실이 드러난 뒤 8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김 기획관의 사의를 수용할 계획이다. 김 기획관과 함께 인책 대상으로 거론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겐 별도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 5일자 A1·4면
“협정 밀실처리 외교라인 문책 불가피”
청와대는 김 기획관의 사의 표명으로 협정 파문이 진정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대통령기획관으로는 부족하다”는 분위기가 많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김 장관의 문책론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동시에 이번 협정 파문을 다루기로 했다.
지난 4년 5개월간 ‘MB 외교’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다 낙마한 김 기획관은 2004년부터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대표적 ‘외교 과외교사’ 출신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인 외교안보의 전문가를 찾았는데, 그중 한 명이 당시 성균관대 교수였던 김 기획관이었다.
이후 김 기획관은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MB맨’의 길을 걸었다. 그해 이 대통령은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김성한 외교부 2차관, 남성욱 민주평통 사무처장, 남주홍 국가정보원 1차장, 김 기획관 등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외교안보팀을 구성했다. ‘5인회’로도 불린 이 모임의 막내였던 김 기획관은 여기에서 나온 정책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고서로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실력이 출중하고 일처리가 거침없다”며 그를 총애했다. 여기서 나온 게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이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1급)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본격적으로 대북 강경노선과 한미일 동맹 강화를 주도했다. ‘그랜드 바겐(북핵 일괄 타결)’ 아이디어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였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해체하는 대신에 그 기능을 김 기획관에게 줬고, 그는 1급으로선 유일하게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김 기획관의 경질을 놓고 이날 청와대에서는 “이 대통령이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검찰 조사로 상심이 클 텐데, 또 한 명의 최측근이 곁을 떠나게 돼 더욱 깊은 상실감에 빠질 것”이라는 말이 들렸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