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오지 기행 고요로 들다/박후기 외 지음336쪽·1만4000원·문학세계사
강원 홍천군 살둔산장. 시인 박후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슴에 안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봉인을 뜯듯 밤새 산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흉금을 터놓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세계사 제공
박후기 손택수 이문재 김산 고영 등 시인 23명이 전국 곳곳의 오지를 찾았다. 강원도 골짜기 산장, 충북의 수몰지 인근 마을, 뭍에서 통통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전라도의 외딴 섬. 인적이 끊긴, 또는 드문 이런 곳에서 시인들의 시상(詩想)은 풍부해지고 사색은 깊어진다.
강원 홍천군 살둔마을을 찾은 시인 박후기는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 혹은 도달 시간만을 두고 말한다면 더이상 ‘오지’는 없다. 마음에서 잊힌 곳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오지라는 말은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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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단임골을 찾은 이문재는 13년 전 이곳에서 보낸 아침을 시처럼 표현했다. “전파가 잡히지 않아 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던 곳. 그해 6월, 하룻밤 자고 문을 열었을 때, ‘귀가 캄캄했다’. 사방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찬란했다. 산간에 들이퍼부어지는 햇살은 새소리와 버무려지면서, 공중에서 은박지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지에는 빈집이 흔하다. 온기가 사라진 집은 아프게 쓰러져 간다.
막상 오지에 가면 별 볼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근처에 민박집도 음식점도 거의 없다’는 한 시인의 솔직한 고백처럼 불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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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