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소통-공감 이끌어내는 최고의 전략이다
개그콘서트 중 ‘용감한 녀석들’.
그런 점에서 성형은 ‘미친 짓’이다. 모든 차이와 개성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성형은 어느덧 ‘미시 정치’의 핵심이 됐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지배하는 욕망의 배치라는 점에서 그렇다. 더이상 ‘이목구비’가 아니라 턱과 이마, 뒤통수, 아니 몸 전체가 성형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쟁 때도 아닌데 이렇게 온몸을 ‘깎고 조이고 째고’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차이가 사라지면 남는 건 서열과 차등뿐이다. 작은 얼굴, 큰 눈, 두툼한 입술, 긴 다리, 식스팩 등. 이제 사람들은 이 기준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과 길흉화복을 점친다. 그렇다면 참 이상하다. 마이클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 등 세계적인 대스타들은 대체 왜 그토록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인기가 많았는데도.
이 대목에서 반드시 환기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성형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건 외모를 특권화하는 권력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그리고 그런 차별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 좌절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바로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자각이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그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도피는 맹목을 낳고 맹목적 질주가 곧 파시즘의 원천이다. 성형이 ‘미시 정치적’ 키워드가 됐다는 건 이런 맥락이다. 이 지독한 레이스의 끝은 대체 무엇일까? 모든 이가 길고 가늘고 예뻐지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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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