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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임혁백]‘박근혜 대세론’은 지속될 것인가

입력 | 2012-06-19 03:00:00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 대세론’이 다시 살아났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와 ‘안철수 현상’의 출현으로 박근혜 대세론은 무너졌으나 4·11총선에서 ‘선거의 여왕’ 박근혜는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을 구출하고 총선 승리를 견인함으로써 2004년에 이어 ‘박다르크’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줘 ‘대세론’을 다시 살렸다. 4·11총선에서 박근혜는 슬림하고 빨랐으며, 선제적이었고 포용적이었다. 박근혜는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슬림화된 조직으로 속도전을 전개했다. 그는 약세지역인 충청도와 강원도를 여러 번 누비면서 두 지역을 석권해 승리의 발판을 만들고, 부산으로 내려가 어린 여성 후보를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내세워 문재인을 조롱했으며 ‘낙동강벨트’를 구축하려는 문재인의 발목을 잡았다. 시대정신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선점함으로써 야당연대의 공격 예봉을 꺾고 이슈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후보들을 중도사퇴시킴으로써 보통사람의 민심을 경청하고 수용해 이념적 중원을 장악했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박근혜의 유목 리더십의 승리였다.

총선 승리 후 박근혜의 지지도는 올라갔고 ‘박근혜 대세론’도 부활했다. 박근혜는 부활한 ‘대세론’을 수성(守城)하려 했다. 먼저 새누리당을 ‘박근혜의 당’으로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대표를 포함해 9명의 최고위원 중 8명이 친박으로 채워졌다. 새누리당은 소속 국회의원의 70% 이상이 친박계로 분류되는 박근혜 일인지배 정당이 됐다. 다음으로, 리더십 모드를 대세론을 탈환하기 위한 유목 리더십에서 대세론을 지키기 위한 수성 리더십으로 바꿨다. 갈수록 박근혜 리더십에는 이동하면서 소통하고, 사후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는 유목 리더십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세론’이라는 ‘마법의 성’에 갇혀 수성에만 몰두하는 ‘얼음 공주’의 모습이 보인다.

경선‘원칙’고수로 권력자 모습 보여


새누리당 내 경쟁자들이 요구하는 ‘완전국민경선제’를 포용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원칙’을 고수하는 박근혜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자의 모습을 본다. 2002년 후보 경선 때 이회창에게 규칙 변경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한 전력이 있는 박근혜가 입장이 바뀌자 ‘원칙’을 내세워 경쟁자들의 요구를 외면함으로써 고집스러운 ‘불통 공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종북파 의원 제명을 넘어 전직 총리 출신 야당 대표를 포함해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에 대해서까지 사상을 검증해야 한다는 판사 출신 당대표의 초법치주의적 발언까지 나오게 했다. 그러나 ‘사상검증’ 발언은 선거공학적으로 핵심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대세론 지키기’에 들어가면서 ‘흘러간 인물’들이 박근혜 주변에 모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아버지 박정희와 올바른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문제가 부상했다. 박근혜에게 박정희는 ‘양날의 칼’이다. 박정희는 한국 산업화를 이루어낸 공로로 현재 역대 대통령 중 인기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동시에 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하고 유신체제를 수립해 인권과 자유를 억압한 공포의 유신 군주로 비판받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한편으로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과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흉탄에 잃은 박근혜의 트라우마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근혜가 아직 유신체제 하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고 유신이라는 과거와 깨끗하게 단절하지 못하는 그의 국가관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 ‘7인회’의 면면들이 유신과 5공시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박근혜와 유신을 오버랩 시키기 시작했다.

대세론 안주해 성공한 후보 없어

대세론에 안주해 성공한 대선후보는 없다. 대세론을 지키려면 대세론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수성에 몰두하다가는 경쟁 후보의 공격을 받아 가랑비에 옷 젖듯 낭패를 보고 만다. 대세론은 마녀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준 ‘독이 든 사과’와 같다. 대세론이라는 독이 든 사과를 먹는 순간 대세론은 사라진다. 박근혜는 더이상 성을 쌓고 칸막이를 쳐 대세론을 지키려 하지 말고 성을 헐고 칸막이를 없애 모두에게 개방적이고 모두를 포용하고 소통함으로써 중원을 장악해 대선으로 가는 대로를 열어야 한다. 대선은 6개월이나 남았다. 지중해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칠 수도 있고 ‘글로벌 분노’가 한국에서도 ‘바꾸자’라는 정권 교체 구호에 불을 붙일 수 있다. 한국 유권자는 지역과 이념으로 고착화된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과 미래 비전에 따라 옮겨 다니는 ‘유목형’ 유권자로 갈수록 바뀌고 있다. 어떤 견고한 대세론의 성도 박근혜를 지켜주지 못한다. 대세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세론을 버려야 하고 ‘성을 쌓기보다 길을 뚫어 나가는’ 유목 리더십으로 돌아가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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