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서대문 독립공원서 대선 출사표
17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복잡해 보였다. ‘노무현의 그림자’를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날인 만큼 흥분과 긴장으로 뒤섞여 있는 듯했다. 그가 출마 선언 장소로 서대문 독립공원을 택한 이유 중 하나도 ‘정치적 독립’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문 고문은 이날 선언을 통해 ‘노무현 가치’의 발전적 계승은 물론이고 노무현을 뛰어넘는 문재인만의 가능성과 비전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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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고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받은 9288건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출마 선언문을 작성하고, 유튜브 등으로 출마 동영상(내용)을 먼저 공개하는 등 참여와 공감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SNS를 통해 공개한 12분짜리 동영상을 ‘TED 콘퍼런스’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TED는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강연으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등 유명 인사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18분 이내로 강연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공유하는 ‘지식 나눔’ 행사다.
이런 다양한 차별화 시도에도 문 고문에게 드리운 노무현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은 듯했다. 문 고문은 이날 출사표를 내며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를 인용했다. “남쪽 언덕 나뭇가지에 앉아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 그러나 그 새는 한번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한번 울면 천지를 뒤흔든다”는 것. ‘날아오르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은연중에 지난달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마친 자신의 처지를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은 새’에 빗댔다.
그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하며 “국민의 뜻이 대통령의 길”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노 전 대통령이 10년 전 내걸었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 고문은 출마선언 뒤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정부는 실패한 경험’이라고 말한 손학규 상임고문에 대해 “민주당의 입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민주정부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부라고 규정하는 건 민주당의 입장과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날 선언을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은 문 고문이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문 고문은 현재 민주당 대선주자들 중에선 지지율(10∼15%)이 가장 높다. 하지만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도로 노무현’ ‘노무현 시즌2’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비욘드 노무현(노무현 넘어)’을 내세우며 경선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만의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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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로서 첫걸음을 뗀 문 고문이 ‘노무현 비서실장’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대로 비상할 수 있을까. 4·11총선 ‘낙동강 전투’에서의 사실상 패배 및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분담론’ 등에서 불거진 정치력 부족 논란도 문 고문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극복해야 할 숙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