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전력대란의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났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냉방용 전력수요가 크게 늘자 예비전력이 그제 오후 한때 316만 kW(예비율 4.9%)를 기록했다. 전력수급 비상조치의 첫 단계인 400만 kW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예비전력이 400만 kW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9월 15일 정전사태 이후 처음이다.
예비전력이 300만 kW 아래로 내려가면 일부 업체의 전원공급을 중단하는 2단계 비상조치에 들어간다. 200만 kW 밑으로 떨어지면 주요 산업체의 사용전력을 50% 이상 감축하는 3단계 긴급절전(節電) 조치에 돌입한다. 그제 기록한 예비전력 316만 kW는 2단계의 문턱에 이르렀으며 전력대란의 위험수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6월 초순에 이런 상황이라면 장마와 무더위가 겹칠 7, 8월을 어떻게 넘길지 난감하다.
올해는 새로 가동되는 발전소가 없는 데다 지난겨울 풀가동했던 기존 발전소들이 집중 정비를 하고 있다. 고장과 사고로 멈춰선 발전소도 많다. 당장 전력공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전력 부족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절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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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고비를 넘긴다 해도 절전 호소만으로 구조적인 전력 부족 상황에 대응할 수는 없다. 전기 사용량이 많다고 해서 발전소부터 지을 일도 아니다. 여름이나 겨울의 피크 수요에 맞춰 발전소를 짓다 보면 평균 발전단가가 올라가 낭비가 크다. 전기 소비를 부추기는 왜곡된 요금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겨울 ‘10% 의무절전제’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력소비(최대전력수요량)는 전년보다 33%나 늘었다. 전력요금을 올리지 않고는 수요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석유, 가스보다 싼 ‘가격 역전’ 현상 탓으로 ‘가장 생산원가가 비싼 고급에너지’ 전기가 땔감으로 쓰이고 있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절전 인센티브를 확대해 전력 사용 습관의 비효율성을 걷어내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