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신축 당시 한옥 양식을 관철한 필립 하비브 대사의 이름을 딴 미국대사 관저 하비브하우스(위). 서양식 건물로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경운궁(덕수궁)의 황실 도서관이었던 중명전(가운데). 1885년 4월 아펜젤러 목사에 의해 문을 연 정동교회(아래). 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일제의 군대 해산 조치에 맞서 한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시가전이 벌어졌을 때의 상황이다. 당시 한국 군인을 간병한 여성 중에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 출신이 많았다. 이 보구여관이 있던 곳이 정동에 있는 이화여고 인근이었다.
‘근대문화유산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중구 정동을 이곳에 촘촘히 배어 있는 근대 역사와 함께 돌아보는 발길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라는 근대문화유산 도보 탐방 프로그램이 생겼다. 정동에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 배재학당 등 문화유산 소유 및 관리 단체들이 합심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 일요일 오후 1시 30분에 진행되는 도보 탐방에 7개월여 동안 약 1500명이 다녀갔다. 5월 25∼27일에는 문화재청 주최로 ‘대한제국으로의 시간여행’이라는 특별프로그램도 진행됐다. 도보 탐방 프로그램을 자문했던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에게서 정동의 ‘최초’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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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양식 결혼도 정동에서 열렸을 공산이 크다. 일제강점기 때 잡지인 ‘별건곤(別乾坤)’ 16·17호(1928년)에 따르면 1890년 2월 서울 정동예배당에서 박시실녀라는 여자와 제주 사람인 강신성이라는 남자가 미국 선교 부인의 주례하에 혼례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는 조선의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어 복색은 전통 방식으로, 예법은 기독교식으로 거행했다.
한편 커피의 전래 과정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정동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흔히 커피는 고종 황제가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갔다가 맛을 본 뒤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와 역시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에서 구해 마셨다고들 한다. 그러나 1883년 인천항 수출입 물품 목록에 커피가 있는 것을 비롯해 아관파천 이전에 국내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곳곳에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강임산 사무국장은 “정동은 서양인 선교사 등에 의해 서양식 교육과 의술, 문화가 도입된 일종의 ‘다문화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문의 02-732-7524.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