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년째 야학활동 고려대 동아리 ‘운화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고려대 교육봉사 동아리 ‘운화회’ 회원들과 운화회에서 세운 ‘종로야학’ 출신 제자들이 11일 오후 고려대 본관 앞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운화회 회원 정종억 씨, 종로야학 졸업생인 신창희 김남선 씨, 운화회 재학생 회장인 강성민 씨, 운화회 회원 한경렬 김현정 씨 나흥식 고려대 의대 교수.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0대 초반의 젊은 스승들은 이름도 없고 생일도 모르던 제자들에게 공부의 재미와 가족의 사랑을 가르쳤다. 동아리 초창기 회원 중 한 명인 상도테크 김현정 대표이사(전자공학과 73학번)는 “버스 회수권 한 장이 15원이던 시절 운화회 회원들은 매달 용돈을 쪼개 모은 1000원을 야학 운영비로 냈다”며 “일명 ‘가리방’(등사기)으로 밤을 새워 교재를 만들었고 아이들에게 실제 학교에 다니는 느낌을 주고 싶어 교가와 교훈도 직접 만들었다”고 추억했다.
고려대 학생들이 공짜로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매년 평균 40여 명의 고아와 저소득층 아이들이 야학으로 찾아왔다. 2년 동안 국어 영어 산수 과학 등 중학교 기초 과목을 배운 아이들 중 일부는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하기도 했다. 1973년 종로야학에 입학한 뒤 홍익대에 수석 입학하는 기적을 이룬 구두닦이 출신 신창희 씨(55)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정보기술(IT) 업체 윈컴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신 씨는 “선생님을 마치 친형처럼 따르면서 공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공부뿐 아니라 바르게 사는 법, 옳게 사는 법을 배웠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종로야학의 기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5년 ‘반디공부방’으로 이름만 바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월세 30만 원짜리 빌라에서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예전처럼 졸업생들에게 수료증을 주지는 않지만 3년간 빠지지 않고 등교한 학생에게는 ‘터줏대감상’을 준다. 요즘도 매일 오후 6시면 지역 저소득층 가정의 중학생 12명이 이곳을 찾아 고려대 11학번 교사 8명으로부터 공부를 배운다. 11학번 교사들은 각자 전공을 살려 영어 수학 언어 등을 가르친다.
운화회가 전통을 이어오는 데는 운화회 출신 동문회와 종로야학 졸업생 동창회의 끈끈함이 밑거름이 되고 있다. 운화회 선배들은 후배들이 돈 걱정 없이 교육봉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매달 운영비와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동아리 창립멤버인 한경렬 씨(국문학과 69학번·전 충북여중 교사)는 “운화회 멤버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적지 않지만 가르침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적은 금액이라도 일정액을 매달 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학을 졸업하고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종로야학 출신 제자들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운화회 스승들을 초청해 감사 행사를 연다.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의 운화회 회원에게도 꼭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이들은 올해 15일에도 서울의 한 식당에서 감사 행사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