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시골 마을 마이양가나에서 온 틸란카 샤싱카 씨(25)는 부모와 누나, 5년 전 결혼한 아내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다섯 가족이 섬유회사 직원, 버스운전사, 마트 점원으로 일했지만 우리 돈으로 50만 원가량 벌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2009년부터 2년 넘게 퇴근하면 하루 3, 4시간씩 한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지난해 9월 취업비자가 나왔을 땐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뻐했다. 한국에서 받은 월급 180만 원가량 가운데 150만 원을 매달 집으로 송금했다. 지난해 샤싱카 씨와 한국에 같이 온 이종사촌 동생 나누 시카 씨(24)는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한 형이었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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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얀 아스틸랑카 씨(28)는 한국 동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자기가 대신 일을 처리해 줄 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한국인 회사 동료는 “너무 성실해서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제일 성공할 형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의 스리랑카인 동료 타리 루 씨(23)는 “숨진 한국인들과 스리랑카 동료들은 직원 가운데서도 서로 놀리고 껴안고 장난치는 친구 사이였다”며 “제일 친한 동료 사이에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부산 경남 일대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는 1800명가량. 이날 샤싱카 씨의 시신이 안치된 부산진구 개금동 백병원에는 스리랑카인 동료 20여 명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