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중고차 시장에 왜 복숭아는 드물고 레몬만 넘쳐나는지 설명한 이론으로 200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중고차 시장의 상인들은 차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만 구매자는 차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정보가 부족한 구매자들은 레몬에 속지 않으려는 마음에 좋은 차가 있어도 선뜻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 좋은 차를 보유한 주인은 제값을 못 받는다는 생각에 차를 시장에 내놓길 꺼리게 된다. 결국 중고차 시장에는 레몬만 많아진다.
이렇게 생산자 또는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은 시장을 교란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비자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신뢰성 있는 기관이 동종 상품의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주는 비교정보는 특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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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상품 비교정보에 항상 목말라 왔다. 일부 ‘파워 블로거’들은 소비자의 갈증을 악용해 특정상품을 추천하고 기업에서 뒷돈을 받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산하 기관인 한국소비자원 및 소비자단체와 손을 잡고 내놓은 ‘K-컨슈머리포트’의 반응이 뜨겁다. 3월 말 공개된 등산화 품질비교, 4월 초 변액연금보험 상품수익률 비교정보는 공개 직후 공정위 서버를 다운시킬 만큼 관심을 끌었다. 좋은 성적을 받은 등산화 제품은 판매량이 2∼3배로 뛰었다. 수익률이 낮게 평가된 변액연금보험상품 운영사들은 신규 가입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업계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생명보험회사들은 변액연금보험 수익률의 계산방식, 비교시점 등을 문제 삼고 나섰다. 하지만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나도 가입자인데 수익률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공시체계를 바꾸겠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자 머쓱해진 상황이다.
컨슈머리포트가 인기를 끌면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소비자정책으로 기억될 첫 번째 공정위 수장(首長)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스터 컨슈머’라는 별명도 얻었다. 물가인상 억제와 동반성장 추진을 위해 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비판에서도 오랜만에 벗어났다. ‘김동수 공정위’는 여세를 몰아 보온병, 프랜차이즈 커피, 유모차 등 생활밀착형 제품 보고서를 계속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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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