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환 천리포수목원장 전 산림청장
10년이 지나자 참나무 숲이 조성됐다. 40년 후에는 우거진 숲 사이로 꽃이 피고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마을이 됐다. 소설의 주인공 부피에는 37년간 나무를 심고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됐다.
사실 장 지오노는 출판사로부터 ‘당신이 만난 사람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실화가 아닌 소설을 썼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부피에와 같은 실존인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루는 한 노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자신의 산을 사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는 얼핏 보기에 모래언덕뿐인 산을 사들였다. 42세 때였다. 교통이 불편하고 농사는 물론이고 풀도 자랄 수 없는 모래땅에 그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흙을 넣어 주고 양동이로 물을 날랐다. 하지만 세찬 바닷바람을 견디지 못해 나무는 쓰러졌다. 살아남은 나무도 모래땅에서 자라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식물도감이 해지도록 나무공부를 했고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수목원을 찾아다니며 전문가들을 만나 모래땅에 살 만한 나무들을 구해 심었다. 이런 노력으로 천리포수목원에는 현재 400여 종의 목련과 370여 종의 호랑가시류를 비롯한 1만300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았고, 미국호랑가시학회는 ‘호랑가시수집수목원’으로 공인했다.
그는 58세 때인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으로 귀화해 천리포수목원에 본적을 뒀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나무와 결혼했잖아”라며 평생 모은 재산과 정열을 오직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쏟았다.
2002년 4월 81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말은 ‘나무가 행복한 수목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일군 54만 m²의 토지와 1만3000여 종의 식물을 대한민국에 유산으로 남겼다. 천리포 모래땅을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일군 고 민병갈 원장, 그는 분명 이 땅을 살다 간 엘자아르 부피에다.
8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평소 그는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마라. 묘 쓸 땅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돌아가신 뒤 고인의 뜻을 어기고 양지 바른 곳에 묘지를 썼다. 천리포수목원은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그를 나무 곁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수목장(樹木葬)을 하려는 것이다.
조연환 천리포수목원장 전 산림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