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투표날만 기다렸는데…” 88세 재일교포의 눈물
“이 서류로는 투표 안 된다고요?” 28일 일본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이희팔 옹이 투표용지를 받기 위해 서류를 건네고 있다. 이 옹은 사전에 부재자 등록을 하지 않아 투표를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김창원 도쿄특파원
하지만 이 옹이 투표용지를 받기 위해 본인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재외선거인 신고(부재자 등록)가 돼 있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외국에 거주하는 국민이 투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관을 방문해 부재자 등록을 해야 한다. 이 옹은 지난해 11월 부재자 등록 때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가서 부재자 등록 서류를 모두 작성했지만 서류를 정작 영사관에는 제출하지 않았다. 민단에 가서 서류를 작성만 하면 모든 절차를 대행해주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옹은 2010년 모의투표에도 참가했을 정도로 이날을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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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려면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해서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투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 선관위 직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온 노인의 허탈한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다. 옆에 있던 대사관 직원이 “12월 대선 때는 꼭 투표하실 수 있도록 돕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자 이 옹은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며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 옹의 눈물’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현행 선거법은 국내에서는 부재자 신고를 우편으로 손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국외 부재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본인이 직접 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중국적자의 투표를 방지하고 본인 확인을 위해 여권 사본이 아닌 진본을 일일이 대조해야 한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투표 당일 현장에서도 할 수 있는 본인 확인을 이중삼중의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규제하는 것은 유권자의 편의를 무시한 처사다. 올 1월 전 세계 재외국민 부재자 등록률이 5.57%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것도 이 같은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제2의 이희팔 옹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번거로운 제도를 대폭 손질하기 바란다.
김창원 도쿄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