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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형삼]소양강 처녀

입력 | 2012-03-28 03:00:00


춘천 의암호에는 산들산들 봄바람 앞에 저고리고름 날리는 ‘소양강 처녀상(像)’이 서 있다. “무슨 뱃사공 종아리가 저렇게 가늘어? 치마는 또 왜 저리 짧고….” 몸매가 호리호리하다. ‘소양강 처녀’는 뱃사공이 아니다. ‘군인 간 오라버니’ 기다리던 ‘큰 애기 사공’은 낙동강의 ‘처녀 뱃사공’이다. 1953년 유랑극단 단장 윤부길 씨(가수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부친)가 경남 함안의 악양나루에서 입대한 오빠 대신 노를 젓던 두 처녀 뱃사공의 사연을 노랫말에 담은 곡이다.

▷‘소양강 처녀’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렸다. 처녀는 열여덟 살이던 1968년 서울의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 직원으로 일했다. 사무실을 드나들던 음악인들에게 레슨을 받았다. 어느 날 처녀가 춘천으로 음악인들을 초청했다. 작은 갈대섬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고 처녀가 깜짝 놀라 작사가 반야월 씨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반 씨는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소양강 처녀’의 가사를 썼고 작곡가 이호 씨가 곡을 붙였다.

▷극적인 사연은 여기까지다. 이 노래는 가수 김태희가 불러 1970년 가요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처녀는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을 뒤로하고 밤무대 가수의 길을 걸었다. ‘소양강 처녀’는 그제 타계한 반야월 씨의 대표작이다. 서울에 노래방이 생긴 이듬해인 1992년 ‘소양강 처녀’는 노래방 인기순위 1위에 오르면서 20년 세월을 넘어 건재를 과시했다. 세상이 변했는지 요즘 젊은층은 ‘노래방에서 분위기 깨는 노래’ 1순위로 꼽는다고 한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등 무려 5000여 곡을 작사한 반 씨는 주변의 시기(猜忌)를 우려해 여러 개의 예명을 썼다.

▷‘소양강 처녀’가 나왔을 때는 ‘슬피 우는 두견새야’ ‘동백꽃 피고 지는’이라는 가사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산새인 두견새가 물가에 있을 리 없고, 남녘에서나 볼 수 있는 동백꽃이 칼바람 부는 겨울 소양강변에서 피고 질 수 없다고 하는 시비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적이다. 동백꽃의 북방한계선은 충남 서천이지만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부른다. 춘천 출신 작가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도 생강나무꽃이다. 머지않아 의암호 주변에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