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시술 단속 강화하자 불법 약 판매 기승… 경찰 수사
국내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는 낙태약 ‘미페진’. 국내에서 시판되는 사후피임약과 달리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해 태아가 자라고 있는 상태에서 낙태시키는 약이다. 구글 이미지
문제의 약은 ‘RU486(미페프리스톤, 미페진, 미페프렉스)’으로, 국내에서 시판되는 사후피임약과 달리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해 태아가 자라고 있는 상태에서 낙태시키는 약이다. 한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유통될 수 없다. 프랑스나 미국 등에서도 시판은 되지만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거친 뒤 출혈 위험이 없는 임신부에 한해 초기 임신 단계에만 복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문가 진단이나 복용안내 없이 ‘임신 9주 전까지는 먹기만 하면 무조건 낙태된다’고 온라인상에 잘못 알려져 있는 탓에 남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다.
기자가 구글과 네이버, 다음에 각각 ‘미페프리스톤’ ‘RU486’ 등 약 이름을 검색하자 약을 판매한다는 광고 글 10여 개가 떴다. 이 중 두 명의 판매자에게 원치 않은 임신을 한 학생으로 가장해 e메일을 보내본 결과 양쪽 모두 24시간 내로 “약만 먹으면 낙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답장이 왔다.
전문가 진단 없이 낙태약을 복용한 뒤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 게시판마다 ‘약을 먹은 뒤 하혈이 멈추지 않는다’ ‘약을 먹었는데도 임신테스트기에 양성으로 나온다’는 등 관련 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대부분 산부인과가 낙태 시술을 엄격하게 금지하다 보니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청소년층의 문의와 상담이 줄을 이었다. A 양(16)은 네이버 지식인에 “지난해에 낙태약을 먹고 아이를 지웠는데 부작용이 심해 불임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는 글을 올렸다. 온라인 거래 과정에서 사기도 적잖이 발생한다. 스스로를 미성년자 학생이라 소개한 B 양은 “낙태수술을 받지 못해 남자친구와 어렵게 50만 원을 모아 태국 판매자에게 보냈는데 입금 직후 연락이 끊겼다”며 “불법 낙태약을 구매하려던 거라 경찰에 신고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 대변인인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임신주기를 정확히 알지 못해 약을 잘못 복용한 경우 과다 출혈로 응급수술까지 갈 수 있다”며 “자살 사이트에서 청산가리가 유통되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도 정부는 온라인상의 불법 낙태약 유통에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계좌추적 등을 통해 광고 글을 올린 판매책을 추적하고 있다.
:: 사후응급피임약 ::
:: 낙태약 ::
수정란이 착상된 이후 하혈을 유도해 이미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출시키는 약.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는 전문의 상담을 거쳐 임신 6주 이내의 임신 초기에 복용. 낙태가 불법인 국내에서는 유통될 수 없음.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