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채널A ‘천상의 화원 곰배령’
종영한 채널A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에 출연했던 최불암은 “연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찾아오는 일”이라고 했다. 많은 영혼을 담았던 그릇이어서일까. 그 그릇은 넓고 편안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근 종영한 채널A 주말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의 큰어른 최불암(72)을 만났다. 서울 여의도의 잘 꾸며진 카페에서 만났지만 넉넉하고 푸근한 특유의 말투 덕택인지 인터뷰 내내 시골 마을의 평상에 앉아 있는 분위기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내 특유의 ‘파∼’ 하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극 중 재인(유호정)의 아버지 부식 역을 맡았다. 가족까지 등진 채 고향 땅을 일구고 살던 괴팍한 노인이었지만 딸 재인이 갑작스레 곰배령에 찾아들면서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게 된다.
“부식의 방 옷걸이에 여름에 쓰는 부채를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함께 무심히 걸어 놨지. 그 모습이 참 좋았다는 사람이 있더라고, 정말 시골집 같았다면서. 사는 게 어디 그리 매일 깔끔하고, 정돈돼 있나?” 요즘 배우들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보다는 화면에 예쁘고 멋지게 나오는 일을 더 신경 쓴다고 그는 일침을 놓았다.
극 중 부식은 화영(김영애)과 오랜 세월 반목하다 다시 합치면서 황혼의 로맨스를 꽃피운다. 김영애와는 1971년 ‘수사반장’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김영애와의 연기, 아. 좋았지. 허허…. 화영을 다시 만나 다방에 가는 장면 있잖아? 거기서 화영에게 야단맞는 가운데 ‘당신 없이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고백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이었어.”
그는 드라마 촬영 중에도 줄곧 KBS1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위해 주 이틀 정도는 지방에 다녔다. “나이가 들수록 일이 있어야지. 아무 목적 없이 가만히 있으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끌려 들어가고 말아.”
힘들지 않은지 물으니 “멀리 가 봐야 자동차가 가지 내가 가나”라며 헛헛하게 웃는 그였지만 드라마를 찍으면서 몸무게가 4kg이나 줄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마쳤으니 당분간 쉬면서 부식에서 최불암으로 돌아가겠다며, 그는 며칠 전 다녀온 남도의 섬 이야기를 꺼냈다.
“섬은 유배의 공간이잖아. 단절된 공간에서는 갈대 하나 풀잎 하나도 다 친구같이 가깝게 느껴져. 최후의 여행지가 섬이란 말도 있어. 나도 이제 비우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연기자는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