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 ‘중앙銀 과제와 비전’ 주제 연설
김중수 한은 총재(사진)는 16일 인천 서구 심곡동 한국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집행간부 워크숍에서 80여 명의 한은 간부를 대상으로 ‘중앙은행의 과제와 비전: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의 원고 분량은 A4용지 20쪽에 이른 데다 곳곳에 주석을 달아 학위논문을 연상케 했다.
이 강연문은 김 총재가 거의 매일 두세 시간씩 두 달간 매달려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크숍 직전까지 퇴고를 거듭한 뒤 한은 게시판에 올렸고, 이례적으로 언론에도 배포했다. 강연 내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과 위상이 크게 변했고, 한은 직원들도 세계 속에서 경쟁하기 위해 정신자세를 재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총재가 간부들에게 따가운 질책과 주문을 하면서 강연 내내 긴장된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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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은의 조사연구 역량을 높인다며 수석이코노미스트제도를 도입한 반면 조직 유연화를 위해 ‘직군제’를 없앴다. 특히 올 2월 인사에서 주요 국장직 일부를 1급이 아닌 2급으로 채워 입행 선배가 후배 밑에서 일하게 했다. 또 박사 출신 젊은 직원들을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조직에 충격을 줬다. 4월이 되면 총재, 부총재, 부총재보 4명, 통화정책·국제·거시건전성분석·조사 등 주요직 국장 4명 등 수뇌부 10명이 박사 7명, 석사 3명으로 구성된다. 한 간부 직원은 “한은도 순혈주의를 깰 때가 됐고 김 총재가 때맞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개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한은 직원은 “무리한 충격요법으로 한은의 전통을 흔들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간부 직원은 “예전 같으면 앞길이 보장됐던 보직국장들이 줄줄이 연구직으로 물러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밖에서 온 김 총재가 자기가 데리고 온 사람만 기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석사 출신의 한 간부급 직원은 “과거엔 박사를 딴다고 하면 ‘일은 안 하고 자기 경력만 쌓으려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도 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