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을 관통하는 해당 지하차도는 역사(驛舍)를 지으며 철도시설공단과 익산시가 총 636m 구간 중 343m, 293m씩 만들어 완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공단에서 모두 지어 달라”는 익산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공단 측 구간만 완성된 채 공사가 중단됐다. 익산시 관계자는 “시에서 쓸 수 있는 재원이 전혀 없다”며 “당초 합의와 다른 것은 알지만 공단에서 공사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단이 남은 293m 구간 공사까지 맡는다면 추가로 22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공사를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 박종승 부장은 “익산시가 맡기로 한 지하차도 구간은 아직 토지 수용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2014년 호남고속철도 완공까지 공사를 끝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민원으로 새나간 혈세 9000억 원
철도시설공단이 12일 공개한 ‘연도별 철도사업비 증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익산시 지하차도처럼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성 요구’ 때문에 늘어난 철도사업비가 1998∼2010년 9063억 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총선이 있었던 2004년과 2008년에는 각각 3239억 원과 2476억 원이 지역 민원을 들어주는 데 쓰이며 민원성 사업비 증액이 가장 적었던 2007년(26억 원)에 비해 최대 124배로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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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열리는 해에는 지역 발전을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단 측은 “지역에서는 총선을 ‘개발 호재’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 등을 중심으로 철도개발사업을 일단 공약으로 걸어 놓고 나중에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공사 중단 구간도 많아
공사 멈춘 익산역 사람들이 오가는 도로와 공사현장 사이에 4m 높이의 가림막이 설치된 채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창인동 호남고속철도 익산역 공사현장. 이 구간은 익산시가 철도시설공단에 “시가 담당하는 구간도 공사해 달라”고 요구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공단은 ‘지자체 민원’으로 13년 동안 9000억 원을 추가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익산=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호남고속철도 정읍역 공사도 ‘선상(線上)역사 신축’을 주장하는 정치권 및 지자체와 ‘기존 역사 증축’을 요구하는 공단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경의선 일산역에서는 보도육교를 폭 9m 규모의 생태형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고양시와 정치권 요구에 공단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 “유령 공항처럼 만들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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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 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개인적으로 들어온 ‘지역 민원’도 50건이 넘는다”며 “활용도에 비해 사업비 투입이 과도했던 ‘제2의 무안공항’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타당성을 살펴보고 사업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