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논설위원
김무성은 지역구(부산 남을)에서 무소속 출마해 친박 무소속 돌풍의 진원지가 됐다. 살아 돌아와 4선(選) 타이틀을 달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무성은 친박의 좌장을 자처했지만 박근혜는 “친박에 좌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 차이는 화해의 임계선을 넘어 결별로 치달았다. 친박 일각에서 “김무성은 박근혜의 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무성이 배신자 소리를 들은 것은 두 번째다. 그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신 상도동계였다. 김무성이 이회창의 최측근 비서실장이 되면서 소원해진 YS는 측근들에게 “김무성은 배신자”라고 흥분했다. YS가 이회창과 냉전(冷戰)을 벌일 때였다. 나중에 김무성은 YS에게 “각하, 제가 정말 배신자입니까”라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무성이 친박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YS는 김무성에게 “큰일을 해보라”며 박근혜에 맞설 대선후보로 나설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김무성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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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과 가까운 친박 인사들은 민주통합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이 나온 부산 사상 출마를 물밑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김무성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 자신이 문재인과 맞붙으면 ‘박근혜 대리전’으로 흘러갈 것이고, 선거에 지면 박근혜의 대선 행보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다. 친박 진영은 김무성의 공천 문제를 놓고 이도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간이 흐르며 친박 일각에서 “김무성을 털고 가자”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을 넘어 2014년 부산시장 선거를 내다보는 부산지역 일부 중진이 김무성 견제에 나선 것이다. 김무성이 살아 있다면 앞으로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실리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외부의 적과 싸울 때보다 내전(內戰)에서 더 많은 피를 흘린다는 우리 정치사의 철칙이 작동했다.
김무성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내가 우파 분열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백의종군하겠다”며 고심 끝에 탈당 카드를 접었다. 김무성 스스로도 중진답지 않게 공천 방향을 놓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 것처럼 비치는 게 싫었을 것이다. 한때 친박 좌장이 4선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며 ‘분열=필패’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복잡한 저간의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 공천권을 쥔 친박은 “4년 전 친이가 잡았을 때보다 더하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젠 친박이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답해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